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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하이 Feb 24. 2024

글쓰기가 습관이 될 때

새벽의 글쓰기: 모닝페이지와 세문장클럽

  5:20 세상이 아직 잠든 새벽, 보이차를 홀짝이며 펜을 든다. 빈 종이에 오늘의 날짜를 쓴다. 꼭 일기처럼 시작하는 이 글을 나는 모닝페이지라 부른다.  


  모닝페이지를 알게 된 건 벌써 10년도 전인 고등학생 때였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줄리아 카메론이 쓴 <아티스트 웨이> 책을 읽었다. 그 책은 내 안의 어린아이와 관계를 쌓아가며 창조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12주 차 워크숍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누구나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아티스트라고 필자는 말한다. 단지 자신 안에 막혀있는 창조성의 둑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도 예술가라니, 어린 나는 그 사실에 설레어한 기억이 난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친구들과 이따금씩 12주 챌린지에 도전하고(또 실패하곤) 했지만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해 오는 게 있다면 바로 모닝페이지아티스트 데이트다.


  모닝페이지는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을 세 쪽 정도 적는 것이다. 이때 어떤 내용이라도, 아주 사소하거나 바보 같고 엉뚱한 내용이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아티스트웨이> 줄리아 카메론/ 경당/ p.45)

  저자는 이 모닝페이지를 두고 두뇌의 배수로라고도 부른다. 실제로 내 모닝페이지에는 머릿속에 떠오른 날 것의 생각들, 이를 테면 개가 짖네, 똥 마렵다 같은 1차원적인 리액션들도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꾸벅꾸벅 졸면서 때로는 할 말이 없어서 할 말이 없네만 반복해 쓰면서라도 때가 되면 분량껏 일단 쓴다. 그래서일까, 재밌게도 내 모닝페이지에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은 '글쎄'와 '모르겠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에도 일단 뭐라도 끄적이다 보면 머릿속에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정리가 된다. 고요해진다. 이따금씩 나에 대한 이야기가 펜 끝으로 엮여 나온다.



왜 쓰는가?


  새벽의 글쓰기는 나와의 우정을 다지는 일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번듯한 브런치 글도, 일기도 아닌 이 하릴없는 모닝페이지를 왜 쓰는가 하면 나의 욕망 때문이다. 정확히는 나의 욕망을 알기 위해.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 책에는 이런 글이 있다.


‘나’를 집단 속에 파묻은 사람은 자신의 진짜 마음을 모릅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며 자신을 응시해 본 사람은 집단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고유한 자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욕망은 자기 내면에서 비밀스럽게 느껴지는 생명력,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한 힘입니다.


  새벽은 나의 비밀스러운 생명력을 감지하기 좋은 시간이다. 외부에 공개하는 글이나 하물며 일기를 쓸 때에도 최소한의 이성으로나마 나를 검열하고 정제한다. 그러다보면 내 스스로도 나의 내밀한 진실에 가닿지 못하고 살게 마련인데, 모닝페이지는 그런 나를 오롯이 마주하는 시간이다. 상념의 쓰레기통 속에서 나는 날것의 나를 발견한다. 때론 더럽고 저열하고 잔인한. 일상적으로 거세되지만 그럼에도 옳고 그름에 갇히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며 생동하는 욕망. 그것을 붙잡아 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진실해진다. 철저하게 내가 된다.


  글을 쓰는 건 나를 표현할 언어를 갖기 위함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에게 가닿고자 하는 근원적인 욕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줄리아 카메론이 말한 '모든 이들이 아티스트'라는 말도 이러한 표현욕의 맥락일 것이다. 자신을 가장 적확하고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에 따라 문학, 그림, 영상, 음악, 춤, 요리 등 그 형태가 달라질 뿐. 현재로선 내겐 그 수단이 글이다. 내 안의 솟구치는 이야기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나는 글을 쓴다. 나를 더 풍요롭게 표현하며 살기 위해 나의 언어를 단련한다.  



꾸준히 쓰기 위해서는


  마음이 내켜 글을 쓰는 것과는 별개로, 아무 감응이 없는 날조차 꾸준히 글을 짓고 창작하는 일은 또 다른 의미로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글쓰기를 꾸준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언가를 습관화할 때 으레 그렇듯 내 경험상 글쓰기 루틴에도 3가지 전략이 유효했다. 첫째, 매일의 로드는 줄이고 둘째, 페이스 메이커를 두고 셋째, 즉각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판을 짠다.

  최근에는 친구 혜선과 세문장 클럽을 시작했다. 룰은 간단하다.


세문장클럽 규칙

1. 매일 어느 주제든 딱 세문장만 쓰고 공유한다.
2. 중구난방, 잘 쓰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매일 쓰는 것
3. 어느 정도 분량이 채워진 글은 꼭 공적인 채널(브런치, 블로그 등)에 업로드, 공개한다.


  처음엔 무슨 얘길 쓸까 고민했다. 이번엔 독자가 궁금해할 이야기를 써보자. 루틴에 관해 연재하게 된 건 내 첫 번째 독자, 혜선 덕분이었다. 예전에 혜선이 유독 눈을 반짝이며 내 루틴에 대해 궁금해했던 게 떠올랐다.

  실은 나는 내 지독한 루틴인생이 자랑스럽기도, 꼭 그만큼 혐오스럽기도 했다. 이 이야길 썼을 때 사람들에게 오해나 미움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언젠가 이 이야기를 풀어내면 속이 참 후련하겠다 생각했는데, 애증의 루틴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 아주 큰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제를 잡고 매일 10분간 딱 3문장만 써보기로 했다. 꼭 10분씩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좋다. 출근길에, 점심을 먹다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 휴대폰을 만질 시간이 있으면 세문장 쓴다. 친구에게 카톡 메시지 세 개를 보내듯 말이다.

  글 욕심이 있는 사람이면 대게 이 시점에 머뭇거리게 되는데, 이때 세 가지를 명심한다.


1) 처음부터 대단스러운 글을 쓰려하지 말 것. 대문호인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를 400번 이상 퇴고했다. 우리는 이제 겨우 1번이다. 세상의 모든 초고는 쓰레기일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자.

2) 내 호기심을 시덥게 여기지 않는다. 남들은 으레 넘기는 일이라도 내 시선에서 유독 눈에 걸리는, 신경이 쓰이는 포인트가 있다면 그곳에 이야기가 있다. 나를 동요하게 만든, 보물 같은 의문을 물고 넘어진다.

3) 검열 없이 풀어놓는다. 초고의 힘은 정돈된 문장력이 아니라 충동 그 자체에 있다. 옳고 그름에 갇히지 않고 내가 품은 호기심을 진실되게 쓴다.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를 나를 곡해하지 않는 컴포트존에서 세상에 꺼내어 놓는다. 든든한 매일의 페이스메이커이자 독자가 있다는 사실에 나를 긴장하기도 또 설레기도 한다. 당신은 나의 어떤 것이 궁금할까 곰곰이 되짚으며 글을 썼다 지우길 반복한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친구에게 수다 떨듯 가벼워지자며 나를 달랜다. 대게 새벽의 책상에서, 바쁜 날엔 이동하는 동안 짬을 내 세문장을 쓴다. 매일 한 번씩 오가는 카톡 속에 문장이 쌓이고 글이 되어 브런치북으로 엮이게 되었다. 모두 덕분이다.


  이 글 끝에 당신은 나를 더 이해하고 나는 나를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오늘도 새벽이 오면 마음껏 나를 쓴다. 떨리는 마음을 담아 당신에게 전한다. 진짜 우리가 서로에게 가닿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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