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퐈느님 Jun 13. 2016

[Ecuador] Latitude 00˚, 적도를 밟다

적도에서 나는 달걀을 세웠을까

에콰도르(Ecuador)는 나라 이름에서부터 적도(Equator, 스페인어로 에콰도르)를 대놓고 집어넣은, 적도가 지나가는 나라다. 적도가 지나가는 나라는 몇 군데 더 있지만 적도를 이렇게 대놓고 이름에 집어넣은 나라는 에콰도르뿐일 거다.

나에게 에콰도르는 갈라파고스 섬이 있는 나라로만 알고 있었지만, 갈라파고스 섬을 가기 위해 들렀던 수도 키토(Quito)에도 예상치 못한 재밌는 볼거리가 많았다.


적도에서 나는 달걀을 세웠을까

에콰도르는 적도가 지나가는 만큼 적도 관련한 관광지가 몇 군데 있다. 키토에는 적도 박물관이 있어 '여기가 적도 지나가는게 맞을까?' 하고 의심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준다.

치안이 좋지 않아 택시를 타고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홀로 여행하는 가난한 배낭여행객에게 배낭이 없는 상태에서 택시는 사치가 분명하기 때문에 환한 대낮에 시내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고 적도 박물관을 찾아갔다.

에콰도르의 적도 박물관에 갈 때는 미타 델 문도(Mitad del Mondo)를 물으면 된다.

적도 박물관에 도착하면 으리으리하게 꾸며져 거의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는 박물관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정확한 적도는 아니라고 하더라.

적도 박물관. 으리으리하게 공원처럼 꾸며져있다.

뭐, 일단 이거 적도라고 표시는 되어있으니 인증샷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서라도 부탁했다.

실제 적도는 아니라고 할 지 언정 인증샷은 빠질 수가 없다. 처음으로 사진을 찍어달라 분신같이 안고 다니던 카메라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맡겼다.

공원처럼 잘 꾸며진 박물관을 구경하고 난 뒤, 이게 끝이야? 하고 돌아가면 낭패다.


2~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적도가 지나가 여러 가지 적도 관련 실험도 할 수 있는, 인티난 박물관(Museo INTINANA)이 있다.

이 곳에서는 적도뿐만 아니라 에콰도르 원주민의 생활모습이나 삶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여기에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적도선이 있었다.

Middel of the World! 이 적도 선 위에서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다.

적도 박물관의 해시계는 다른 곳의 해시계와 다르게 막대기를 꽂으면 시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다른 곳은 비스듬하게 꽂아야 시간이 맞는다고)


신기했던 것은 물 내려가는 방향이었다.

적도에서 물이 내려갈 때는 직선으로 내려가는데 적도 선을 기준으로 조금만 옆으로 가서 물을 내리면 물 내려갈 때 회전이 생긴다.

우리나라, 일본이 있는 북반구 쪽과 호주가 있는 남반구 쪽은 회전 방향이 반대였다. 정말 조금만 옆으로 가도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적도 선 위에서 개수대의 물은 직선으로 빠진다.
적도를 기준으로 남반구 쪽으로 옮겨진 개수대. 회오리를 만들며 물이 내려간다.
두세걸음 옆인 북반구 쪽으로 옮겨진 개수대. 회오리가 반대방향으로 만들어진다.

이 적도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달걀 세우기다. 적도에선 달걀이 못 위에도 쉽게 선다고 한다.

달걀을 세우면 에그마스터가 돼서 인증서도 받을 수 있다고.

분명 같은 달걀로 도전했는데 가이드는 되는데 나는 왜 안될까. 함께 설명을 들었던 일본, 중국, 호주, 유럽인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해발고도 2,850m에 위치한 도시의 모습

키토는 해발고도 2,850m 에 위치해있는데 남미의 여느 고산 도시들처럼 경사를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있다.

낮에는 민소매를 입어도 더울 정도로 햇살이 뜨겁지만 밤에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겨울옷에 패딩까지 입어도 모자랄 정도로 추운 도시였다.

조금만 걸어도 숨찬 고도에다 도시 자체가 굉장히 가파르기 때문에 숨을 헐떡이며 걸어 다녔다.

내가 있던 올드타운은 유럽풍의 건물들이어서 걷기만 해도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선 잘 느껴지지 않지만 굉장히 가파른 언덕

하지만 치안이 안 좋다는 키토였기에 조금만 으슥해지면 손발 땀이 없던 나도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꽤나 긴장했었다.

키토에서 포인트가 되는 몇 가지 건축물 중에 천사의 상과 바실리카 성당이 유명하다. 바실리카 성당은 방문했지만 천사의 상은 치안상의 이유로 혼자 여행하는 나는 과감히 방문을 포기했다.

치안이 가장 중요했던 겁쟁이가 용기 내서 에콰도르에 온 것이니까.

저녁 7시 이전에는 숙소에 들어오지 않으면 꽤 위험하다고 만나는 현지인마다 말해주었기 때문에 야경을 따로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게 웬걸. 내가 머물던 호스텔에서 구시가지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에 살 떨리는 치안이라니.

카메라에 담진 못했지만 내가 머물던 기간에 대통령 취임식이 있어 불꽃놀이도 있었는데, 이 역시 편안하게 숙소에서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감상했다.


겁쟁이 쫄보 여행자라 에콰도르의 도시 키토와 과야킬에서 많은 것을 하진 못했다.

특히 과야킬은 키토보다 치안이 더 불안하다는 론리플래닛 최신 영문판의 설명에 먹을걸 사 오는 것 이외에는 숙소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안 가도 되었다면 가지 않았을 도시지만, 이 여행에서 손꼽아 기대했던 갈라파고스 섬에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들러야 하는 도시였다.

에콰도르의 지진 소식은 한 계절 전, 에콰도르를 다녀온 내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에콰도르가 빨리 복구되고, 기약은 없지만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좀 더 편안히 여행할 수 있는 안정된 치안까지 갖추길 빌어본다.

작가의 이전글 [Ecuador] 불안이 감사로 바뀌는 친절의 매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