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영이 Jan 19. 2023

스물 아홉, 타투는 처음입니다만

내 나이 서른을 앞두고 인생 첫 타투를 했다.

타투를 문신이라고만 칭하며 탐탁지 않아 하는 주변 어른들의 은근한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나에게 타투란 우아하지 않은 것이자 후회가 뻔한 행위였다. 귀도 양쪽 귓불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도 뚫지 않고 단아와 단정을 추구하던 내가, 가진 문신이라고는 왼쪽 눈썹과 오른쪽 눈썹 두 개가 고작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몸에 타투를 새겼다.

시작은 이랬다.


여름휴가 때, 14년 지기 중학교 동창과 처음으로 부산 여행을 갔다. 아주 한 여름의 일이다.

나시를 수시로 입는 푹 찌는 더위의 날씨였고 아담한 체구에 걸맞게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동창이 타투스티커를 묵직하게 챙겨 왔다. 우리 세대 말로 하면 판박이인데, 어차피 때수건으로 쓱쓱 문지르면 지워질 거 뭔들 못 새기랴. 용이든 토끼든 과감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한참 구경한 끝에 처음 고른 게 빨간 원에 검은색 띠가 둘러진 아주 심플한 디자인의 토성이었다. 어디에 붙일까 내 몸을 훑어보는데 어릴 적부터 있던 팔뚝의 흉터가 눈에 띄었다. 붉은색 얼룩의 흉터인데 아주 어릴 때부터 있던 거라 언제부터 생겼는지, 어쩌다 생겼는지, 혹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났던 건지 알지 못한다.  그 위로 토성을 살짝 얹어봤는데, 이거 완벽한 커버-업이 아닌가. 흉터가 마치 토성의 표면같이 보여서 붉은 흉터도, 토성 모양의 타투 스티커도 완벽한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렇게 판박이를 붙이고 시내로, 해변으로 돌아다니는데 고작 그거 하나로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더라. 고작 가로세로 1cm 남짓의 타투였지만 과감하고 호탕한 MZ가 된 것 같았다. 웃음소리도 더 이상 호호호가 아니라 우하하! 하고 웃어야 할 것 같았다. 그날의 나는 아주 센스 있는 타투를 소유한 멋쟁이였으며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 이거 당장 새겨야겠어.’


무조건. 당장. 내일이라도. 이 타투를 꼭 하고 싶었다. 이 타투 도안을 알게 된 이상, 내 몸에 새기기 전까지 나의 기분에는 한도가 있을 것 같았다.

20년 넘게 타투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는데 내 몸에 도안을 가져다 대는 순간 가지고 싶어 못 견디게 되다니. 마치 '참한 요조숙녀 아가씨'라는 작은 섬에서 해먹에 누워 유유자적 살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국가재난급의 쓰나미에 휩쓸려 야생해양생물들이 도사리는 거친 망망대해 한가운데 항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번 눈이 뒤집히면 앞뒤 안 가리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실행하는 나이기에 당장 타투샵을 예약했다.


보는 순간 미간의 긴장을 무장해제시키는 순수한 얼굴의 강아지 캐릭터 도안이 주 무기인 타투이스트 선생님의 모습은 의외로 꽤 중성적이었다. 숏컷에 모범생 안경, 검은 바람막이에 검은 면바지. 수수한 차림의 선생님은 친절하되 방어적으로 모든 질문에 꼬박꼬박 답변을 해주었다.

 

“타투할 때 아픈가요?”

“팔뚝은 아픈 부위가 아닌 편이지만 아플 수도 있죠.”

“어떤 빨간 염료가 제가 가져온 도안이랑 가장 비슷한가요?”

“사람마다 눈에 보이는 색이 달라요. 고민되면 그냥 제일 가운데 색으로 고르세요.”

“인스타 올리게 그리는 거 조금만 찍어도 될까요?”

“...”

“... 그냥 안 찍을게요.”

“그럽시다^^”


그렇게 한순간에 토성 판박이는 평생 나와 함께하게 되었다.

어찌나 신이 났던지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가장 친한 직원부터 시작해 안면만 트고 데면데면하게 지낸 직원들까지 모조리 찾아다니며 팔뚝을 걷어댔다. 어디 그뿐이랴. 마주치기만 하면 회사의 CFO님과 이사님까지 붙들고 자랑을 했다. 나의 흥분상태는 기어코 전무님 방문까지 두드리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아니, 사실은 데면데면했던 디자이너 C님께서 양 팔뚝의 인자한 미륵을 마주하게 하시고 이사님께서 전완근 위 수사슴을 풀어놓으시며, 매니저님께서 옆구리에 새기신 구절을 낭독하시니 콩알 타투를 새긴 나는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 맞다. 우리 회사 되게 젊은 회사였지. 까불지 말아야겠다.

 

타투 디자인이 너무 심플한 나머지 간혹 모나미로 그린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돈 주고 했냐는 말도 들었다.) 내 눈엔 용보다 간지 나고 그 어떤 글귀보다도 뜻깊다. 이 타투로 말할 것 같으면, 내 몸의 흉터마저도 있는 그대로 예쁘게 안고 살아간다는 '러브유어셀프'의 표본이자 고작 두 개의 획만으로 '조금 아쉬운 결함'에서 '가장 애정하는 부위'로 탈바꿈한 기적인 것이다.

하여튼 졸라 멋지다.

작가의 이전글 유튜브 작가의 비굴한 연봉협상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