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을 노린 역발상 포지셔닝 전략
제주도에서 흑돼지와 백돼지 중 한 종류의 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어떤 고기를 선택하시겠나요? 아마 대부분 제주도의 토종 품종인 <흑돼지>를 선택할 텐데요. 제주도에서 '백돼지'로 차별화된 승부를 본 곳이 있습니다. 바로 <육고깃집>인데요. 오픈시간만 되면 웨이팅으로 금세 만석이 되는 이곳에는 어떤 브랜드 전략이 숨어있을까요?
제주도 흑돼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제550호)으로 되면서 제주 관광산업의 중요한 축산 특산물입니다. '제주산 흑돼지'는 관광객과 소비자에게 제주도만의 고유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면서 지역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그 덕분에 제주도는 흑돼지로 유명한 가게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들 '제주도의 인생 흑돼지집이 어디야?'라고 물어본다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자신만의 흑돼지집을 추천해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제주도에는 흑돼지보다 백돼지가 훨씬 많습니다. 가축 통계에 따르면 제주도 흑돼지는 전체 돼지고기의 약 24%에 불과한데요. 그러나 소비자들에게 '제주도 인생 백돼지 집이 어디야?'라는 질문에는 흑돼지집과 다르게 쉽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즉, 백돼지 시장은 흑돼지 시장에 비해 포지셔닝 경쟁자가 현저히 적다는 것이죠. <육고깃집>은 이 공백을 정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마케팅의 거장 잭 트라우트는 저서 <포지셔닝>에는 '시장에서 1등이 될 수 없다면,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라'라고 말했습니다. 흑돼지 시장엔 이미 수많은 경쟁자가 포진해 있었지만, "제주 백돼지"시장에는 뚜렷한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소비자는 자연스레 '흑돼지가 아닌 백돼지라니?'라는 호기심으로 <육고깃집>에 눈길을 주게 된 거죠.
이 집의 또 다른 핵심 판매전략은 매일 정해진 수량만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메뉴판에 있는 메뉴 대부분이 당일 한정 메뉴로만 판매하고 있는데요. 대표 메뉴인 '뼈구이 세트(1kg, 8만 원)'는 하루 평균 6세트가 소진되면 끝입니다. 추가 주문도 어렵고, 원하는 부위는 순식간에 품절됩니다. 소비자들은 육고깃집의 시그니처 메뉴를 경험하기 위해 오픈런에 맞춰 줄을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한정판 전략(FOMO)은 "놓칠까 두려운 마음"을 자극합니다. 한국소비자원의 2022년 조사에서도 '한정 수량'표시가 있는 상품은 일반 상품보다 구매 확률이 28% 높게 나타났습니다. 관광객은 "오늘 아니면 못 먹는다"는 긴장감에 줄을 서고, 운 좋게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SNS에 인증할 만한 경험이 됩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제주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체험'으로 승격되는 것입니다.
이 집은 흔히 말하는 '친절 서비스'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손님을 위한 테이블링 앱도 없고, 웨이팅을 위한 편의 제공도 거의 없습니다. 기다리다 시그니처 메뉴를 못 먹고 돌아갈 수도 있죠.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런 단점들이 오히려 브랜드 스토리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결국엔 제일 중요한 건 '맛'입니다. 제주도에서 흑돼지를 먹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선 백돼지 고유의 맛을 확실히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육고깃집>은 '백돼지도 이만큼 맛있을 수 있구나'와 같은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최근엔 '돈마호크' 등 갈비가 붙어져 있는 돼지고기가 익숙해졌지만 2016년 오픈 당시만 해도 '뼈갈비' 같은 돼지메뉴는 생소했습니다. 숯불에 구워서 육즙을 가득 담은 갈빗대를 잡고 뜯어먹는 경험은 오로지 이 집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사장님의 고기에 대한 진심은 누구보다 깊습니다. 무심한 듯 응대하다가도 고기를 굽고 설명할 때는 열정적입니다. 부위별 특징, 굽는 방법, 먹는 순서까지 직접 안내해 주는데, 이는 단순한 식사가 아닌 <육고깃집>에서 가장 맛있게 고기를 즐기는 방법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고객들에게 '고기 하나로만 승부하는 집'이라는 스토리로 전환됩니다.
결국 고객은 완벽한 서비스보다 독특한 경험과 확실한 맛을 선택한 것입니다. 한국관광공사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제주 방문객의 71%가 "독특한 음식 경험"을 여행의 주요 목적으로 꼽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집이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네이버 플레이스 등록도 소극적이고, 인스타그램 마케팅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민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유명세를 얻었고, 이제는 관광객까지 줄을 서는 집이 되었습니다.
브랜드를 운영할 때 흔히 외부적 요소(간판, 광고, 이벤트)에 집중하기 쉽지만, 결국 음식점의 본질은 맛입니다. 닐슨의 글로벌 신뢰도 조사에서도 '지인 추천'이 광고보다 83% 더 높은 신뢰도를 보였습니다. 이 집은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본질에 집중해, 오히려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입니다.
<육고깃집>의 브랜드 전략을 보면서, 다른 소상공인도 적용할만한 전략은 어떤 게 있을까요?
많은 소상공인들이 가게 홍보를 위해 많은 비용을 광고 홍보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우려되는지 점은 수많은 경쟁자 속에서 전략 없이 광고비를 지출하는 건 오히려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나의 브랜드가 어떤 시장을 중점으로 공략할 것 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건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을 무작정 노리기보다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내는 편이 훨씬 유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촌에서 시작해 성수까지 확장한 카페 '라프레플루트'는 '프리미엄 과일 빙수'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했습니다. '신라호텔에서 공급받는 애플망고빙수'로 브랜딩 하면서 '프리미엄' 이미지와 공급 과일 출처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신뢰까지 확보했습니다.
카페를 넘어 식당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예컨대 직장인 밀집 상권에서는 "간단한 점심 한 끼로 피로 해소까지 책임지는 보약 곰탕" 같은 포지셔닝이 가능합니다. 단순히 '든든한 한 끼'가 아니라, '컨디션 회복'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제시하는 것이죠.
포지셔닝 전략을 선택하기 위해선 몇 가지 확실한 핵심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인데요. 잠재 고객 수요가 충분한지 충분한 데이터 검증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시장의 수요가 없는데,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하면 수요 없는 공급 현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경쟁자 분석입니다. 해당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경쟁자는 없는지, 경쟁자가 있다면 왜 소비자 인식에 확실한 포지셔닝을 구축하지 못했는지 확실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경쟁자 분석을 통해 나의 포지셔닝 전략에 적용가능할 지점이 있는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몇 년 전 <육고기집>을 방문했었을 때, 추천받은 지인에게 던졌던 질문이 생각나곤 합니다. "제주도 와서 굳이 백돼지를?". 그러나 뼈 붙은 돼지고기를 손으로 잡고 뜯는 순간, 제주도 인생 돼지고기 집 중 하나로 기억되었죠.
결국 고객은 친절보다 기억에 남을 경험과 확실한 스토리를 원합니다. 그렇기에 브랜드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더할까?"가 아니라, 때로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고집할까?"에 있습니다.
서비스업에서 '고객만족'은 당연한 목표이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만족시키려다 오히려 특색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집처럼 자신만의 철학을 고집하며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 고깃집이지만 아쉽게도 장사할 날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단 소식을 접했습니다. 3년 안에 다시 제주도를 방문해야 할 이유가 생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