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설아 Sep 28. 2021

아빠랑 첫 데이트 때 뭐했어요?

이성교제를 시작한 아이들의 질문 공세


내가 생각해도 좀 우습긴 하지만, 애절하거나 달달한 사랑노래를 들을 때 아직도 나는 남편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니 자동으로 떠오른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갱년기 초입의 말없는 아저씨가 아닌, 스물넷 동갑내기 남자 친구로서의 그,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안정감을 건넸던 그의 사랑을 떠올린다. 그 달달한 모습을 떠올리다 현실의 남편 모습까지 흘러들어오면 피식 웃음과 함께 장면이 멈추긴 하지만 그래도 남편이 주인공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엄마, 아빠랑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어요?
아빠랑 데이트할 때 뭐 하셨어요?


요즘 들어 부모의 첫 만남과 연애스토리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아이들. 그 순진한 눈망울 앞에서 오버하지 않고 담백하게 설명을 하려 해도 그 시절을 더듬다 보면 마음이 이미 분홍빛으로 물드는 걸 어찌할 수 없다. 나는 지금도 남편을 많이 사랑하는가 보다. 


작년부터 여자 친구가 생기길 간절히 바라던 사춘기 아들에게 며칠 전 좋은 소식이 생겼다. 한동안 목소리 내리깔고 차가운 등을 보이며 마음을 쓰리게 하던 녀석이 요 몇 주간  맑은 하늘처럼 보송해지더니 엊그제 행복한 얼굴로 다가와 ‘엄마! 저 여자 친구 생겼어요’라고 말한다. 


엄마에게 이야기해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가족 모두가 신이 난 표정으로 아이 주변에 기쁜 날을 축하해주기 위해 둘러앉았다.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아들의 설레는 마음도 듣고, 엄마 아빠 연애 이야기도 하고, 이성교제에 대한 생각과 지켜야 할 약속 등을 나누는데 이런 시간이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야기든 나눌 수 있는 관계, 걱정하며 통제하기보다 격려하며 주도권을 넘겨주는 부모가 되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기회를 하나씩 건네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 아이들이 중요한 출발선에 섰음을 깨닫는다 

친구와 깊은 우정을 나누는 것, 이성친구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새로 발견하는 것, 사랑하는 연인과 깊이 연결되기 위해 나를 허물 어가는 경험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긴 시간에 걸쳐 깨달은 나는 우리 아이들의 인간관계 여정마다 가장 가까이서 응원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아이보다 앞서지 않고, 아이가 경험하는 실수와 실패를 덤덤히 지켜보며 꾸준히 격려하자고 마음먹는다. 


아이의 설레는 마음이 느껴진다. 

자신을 믿고 축하해주는 가족들 앞에서 경솔하지 않고 잘해보고자 하는 그 마음이 읽힌다. 만남을 통해 아이가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발견하면 좋겠다.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려는 소년소녀의 복숭아빛 마음이 내게도 불어오는 것 같다. 이쁜 가을날 만난 그 마음에 나도 말랑해진다. 


여보, 우리도 세수하고 드라이브나 갑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