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것도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충분히 애도하기가 어렵게 된다. 모든 것이 좋은 때가 있는 것처럼 애도의 시간도 때가 있다. 그러므로 모두가 같이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할 때 자녀들도 함께 애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자녀의 애도를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좋을까?
첫째, 고인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녀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은 교육하고 배우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이 죽음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지속되는 일이다. 따라서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마주했다면 그 순간이 죽음에 대해 나누고 생각해야 할 시간이다. 또한 우리 곁을 떠난 고인을 영영 다시 만날 수 없어 슬프고 아쉽지만, 고인과의 추억을 통해 그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고인의 사진을 정리하거나 유품을 간직하는 것, 혹은 고인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과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이런 시간을 통해 고인의 삶을 회고하면서 그가 가족 모두에게 품었을 소망을 나누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는 것도 건강한 애도의 방법이다.
둘째, 자녀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허락해야 한다. 자녀에게 사별 후 격한 슬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리움, 분노, 당황스러움, 박탈감, 후회와 죄책감 등의 다양한 감정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애도의 과정임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아직 글이나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면 노래나 그림 또는 행동이나 울음으로라도 아이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아이에게 가장 해가 되는 것은 과도한 감정표현이 아니라, 감정이 억압되어 표출되지 못하는 것이다. 청소년기나 청년기의 자녀들은 자신의 슬프고 힘든 마음을 표현할 경우 남아 있는 부모를 더 힘들게 만들까 봐 감정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 또한 부모의 죽음을 처음 경험한 것이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또한 이 시기에 부모의 죽음은 흔한 일이 아니기에 사별 후 복잡한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고 도와줄 친구도 찾기 어렵다.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들도 특별한 사람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고 위로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20살에 다시 엄마를 잃었지만, 사별 후 누구에게도 그 슬픔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어디에서도 적절한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나는 오랫동안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셋째, 아이들이 건강한 애도 과정을 거쳐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자신의 슬픔과 감정을 표현하며 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가까운 어른을 보며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사별 후 대다수 아이들은 남은 부모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감정을 예민하게 살핀다. 만약 우리가 감정을 억누른다면 자녀들 또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할 것이다. 어른들이 슬픔을 표현할 때 자녀들은 비로소 자신의 슬픔을 표현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 이때 주의할 점은 어른이 자신의 슬픔을 지나치게 표현함으로 어린 자녀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자녀의 마음을 돌아볼 여력조차 없을 만큼 당신의 슬픔과 고통이 클 수도 있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일지라도 사별로 인한 슬픔과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자기 자신은커녕 누군가를 돌볼 여력조차 없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어야 자녀를 돌볼 힘도 생겨난다. 만약 당신과 자녀가 겪고 있는 슬픔과 위기를 도저히 혼자서 해결하기 어렵다면 가족이나 친구, 또는 자녀의 선생님 등 당신과 자녀를 도울 수 있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때로는 가까운 지인들의 도움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전문기관이나 아동상담치료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해서 당신이 약하고 무능한 부모는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녀를 위한 적절한 대안을 찾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랑법이다.
넷째, 우리는 자녀들에게 지금은 많이 슬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약해지고 다시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될 거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웃고 즐겁게 지낸다고 해서 고인을 배신하거나 잊는 것이 아니며, 또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잃은 것도 아니고 반드시 불행하게 사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자녀가 더는 고인의 사랑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남아 있는 우리가 더 많이 그들을 사랑하고 지지할 것임을 반복해서 말해줘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확신할 때 슬픔으로부터 더 빨리 회복되고 당당해질 수 있다. 그러니 자녀를 향한 우리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이야말로 자녀의 상처를 치료하는 최고의 약이 될 수 있다. 더 꽉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더 자주 귀를 기울여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주면 된다.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 좋으므로 많은 말을 해주는 어른보다 자신의 말을 기꺼이 들어줄 어른이 필요하다.
다섯째, 부모와 사별한 자녀에게 세상 사람들이 우습게 보지 않도록 전보다 더 모범적으로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해선 안 된다. 부모의 죽음은 절대 아이들이 원하거나 기대했던 일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부모 중 하나를 잃었고, 그 큰 사랑을 다시 느껴볼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상실의 아픔과 박탈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억울하고 화가 날 것인데, 거기에 세상의 편견까지 의식하며 그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해 보이자고 요구하는 것은 절대 옳은 일이 아니다. 또한 혼자 남은 부모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라고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다. 무심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사별한 자녀들에게는 부담과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다. 누구보다 혼자 남은 부모를 사랑하고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은 그들의 자녀들이다.
다행히도 부모와 사별을 경험한 많은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슬픔을 추스르고 건강하게 살아가지만, 때로는 오랫동안 슬픔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자녀도 있다. 사별 후 몇 달이 지나도 여전히 불안해하거나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지나친 슬픔, 불면증, 잦은 악몽, 손톱 물어뜯기, 심각한 집중력 저하와 학업능력 저하, 심한 퇴행, 틱장애 같은 행동을 보인다면 지체 없이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아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