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 길이 정말 맞나

과정

by 최승호

"과연 이 길이 정말 맞나?" 요즘 나는 이 질문을 노트에 자주 적는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 고민을 기록한다. 기록만이 살길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적지 않으면 다음날 아침이면 사라진다. 그래서 밤마다 노트를 펼친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의문이 들었는지. 내가 고민하는 건 결국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예전의 나는 달랐다. 아니, 정확히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달랐다. 과정? 그런 거 중요한가.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학창 시절 시험공부도 그랬다. 과정은 대충, 벼락치기로 때우고 점수만 잘 나오면 그만이었다. 회사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중간 과정은 어떻게든, 결국 성과만 멋있게 나오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겉보기엔 괜찮았다.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사람들이 보기엔 잘 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서른 중반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텅 빈 느낌. 겉은 반짝거리는데 안은 허전한. 말 그대로 겉핥기였다. 내용 없는 보여주기 인생. 누가 물으면 "잘 지내"라고 대답했지만, 정작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사명감 넘치는 모습까지도.


재테크 관련 책들을 읽고, 독서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을 받았다. 당시 모임원 중에서 나만 유일하게 생명보험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도 2개씩이나. 중요한 것은 내가 생명보험을 왜 가입했는지 몰랐다. 설계사가 권해서? 다들 하니까? 뭔가 불안해서? 이유를 모르는 채로 매달 돈만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독서였다. 한 달에 책 한 권. 딱 한 권만 읽자. 혼자 하면 또 작심삼일일 것 같아서, 그래서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솔직히 독서 모임이라는 게 좀 부담스러웠다. 어색하고, 쑥스럽고, 나한테 안 맞을 것 같았다.


첫 모임이 기억난다. 김승호 회장의《돈의 속성》이라는 책이었다. 다들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데, 어떤 분이 말했다. "저는 신용카드를 잘랐어요." 그 말이 귀에 꽂혔다. 나는 독서 모임이 끝나자마자 아내와 상의한 뒤 생명보험 두 건을 즉시 해약했다. 왜 가입했는지도 모르는 보험에 매달 십만 원이 넘게 나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돈을 넣었는데 해약할 때에는 내가 입금했던 금액의 3분의 1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래도 해약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진짜 필요한 건지, 내게 맞는 건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남들 하니까, 불안하니까 그저 따라 했던 것 같다.


그게 시작이었다. 보험만 정리한 게 아니었다. 내 삶 전체를 다시 봤다.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왜 이 사람들을 만나지? 왜 이렇게 살지?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또 웃긴 건, 그전까지 나는 성실하다고 나름 자부했다는 거다. 회사 일 열심히 하고, 약속 잘 지키고, 책임감 있게 살았고, 가정에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독서 모임을 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헛똑똑 하게 살고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지만 방향은 모르는 채로. 열심히 하지만 왜 하는지는 모르는 채로.


그때부터 달라졌다. 독서가 이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다. 책 한 권이 내 생각을 바꾸고, 생각이 바뀌니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니 삶이 바뀌었다. 한 달에 한 권씩, 천천히. 어떤 달은 한 권도 못 읽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음 달에 다시 읽었다.


1년쯤 지났을 때, 문득 느꼈다. 뭔가 달라지고 있다고. 빠르진 않지만 서서히 우상향 하고 있다고. 아침에 일어날 때 조금 더 가벼워진 느낌. 일할 때 조금 더 의미를 느끼는 것.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 조금 더 집중하는 것.

숫자로 보여줄 수 있는 변화는 아니다. 근데 확실히 다르다. 속이 차오르는 느낌. 내가 내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 올해만 2권의 책을 출간했고, 1권을 더 출간하고 싶은 마음이고, 지금도 이렇게 계속 써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정확히는 젊은 사람 모두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 '젊음'이 부러웠다. 이십 대 후배들을 보면, 아 나도 저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좀 더 잘 살 텐데. 좀 더 많이 경험하고,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물론 젊음은 여전히 부럽다. 체력도 좋고, 시간도 많고. 그런데 굳이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이 좋아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보다 낫다고 느껴서. 아내와 자주 이야기한다. "우리의 40대는 어떨까?" "50대에는 뭐 하고 있을까?" "60대가 되면 애들 독립시키고 둘이서 신나게 놀까?" 나이 드는 게 기대된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말이다. 아내가 말했다. "나이 들수록 더 멋있는 어른이 되자." 맞다.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 품격도 함께 키우자. 젊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저들 부부처럼 멋있게 나이 들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자.


그러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천천히, 조급하지 않게. 알찬 과정을 거치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예전처럼 과정은 건너뛰고 결과만 좋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결과는 금방 바래진다는 걸 이제는 안다.

"과연 이 길이 정말 맞나?" 아직도 가끔 이 질문을 한다. 근데 예전과는 다르다. 예전에는 불안해서 물었다면, 지금은 확인하려고 묻는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과정을 제대로 밟고 있는지. 그리고 노트에 적는다.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갔다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과정을 즐기면서.


이제는 안다. 빛나는 결과보다 알찬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 과정 속에 진짜 내가 있다는 것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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