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어서
요즘 부쩍 아들과 딸이 "아빠, 아빠는 왜 계속 동영상이랑 사진이랑 찍는 거야?"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응 아빠는 기억을 잘 못해서 일단 찍어두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나의 대답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딸이 "근데 왜 나랑 오빠를 계속 찍어?"라고. 이에 나는 "아빠는 회사에서나 혼자 있을 때 가온이, 라온이 사진이랑 영상 보면 힘이 나고, 볼 때마다 행복해"라고 하면 "그럼 찍어"라며 세상 흔쾌히 넘어간다.
오늘 아침 등교 전, 첫째가 "아빠, 아침 먹으면서 우리 나오는 영상 보면 안 돼요?"(뭔가를 요청할 때 존댓말을 한다.), "그럼 어제 우리 몸놀이 촬영한 영상 보면서 먹고 학교 가자"라며, 구독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73명의 우리 가족 영상을 드문드문 게시한 유튜브 채널을 들어가서 영상을 시청했다.
아들 : 아빠, 좋아요가 없네
나: 아빠만 보니까
아들 : 아빠, 근데 영상 왜 올리는 거야?
나: 가온이 나중에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돼서 크면 아빠랑 지금처럼 맨날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빠가 죽으면 가끔씩 아빠 보고 싶을 때 가온이 보라고 올려두는 거야. 지금은 아빠가 가온이, 라온이 어렸을 때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최대한 찍어두는 거고, 나중에 가온이가 커서 어렸을 때 가온이 모습도 보고, 아빠랑 엄마랑 노는 모습도 보여주려고 올려보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동안 활기차던 아침 분위기가 적적해졌다. 내가 말하는 동안 아들은 2번이나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등교 전부터 우울하게 하면 안 되니까 얼른 다른 내용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사실 나도 말하면서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엊그제 태어나서 내 품에 안겨 탯줄을 잘랐던 것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아침부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니 더욱 분발해서 기록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지난주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좌측에 딸, 우측에 아들을 각각 팔베개를 한 뒤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 : 아빠 친구 정OO 알지? 죽었단다. 장례식장 가는 길이다.
나 : 예, 기억나죠. 잘 보내드리고 오세요.
옆에서 아이들이 통화 내용을 들었나 보다.
딸 : 아빠, 돌아가신 게 뭐야?
나 : 응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거야.
딸 : 하늘나라로 가면 그럼 이제 못 보는 거야? 못 만나?
나 : 응, 만날 수는 없지.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야지. 라온이도 아빠가 하늘나라 가서 못 만난다고 생각하면 어떨 것 같아?
딸 : 슬플 것 같아.(끝)
나 : (우측 아들에게) 가온아, 가온이는 아빠가 일어나자마자 스플렌더 해줄 때도 없고, 아침에 같이 학교 갈 때에도 아빠가 없고, 태권도 끝나고 데리러 가지도 못하고, 놀이터에서 놀 때도 없고, 또 놀러 갈 때도 아빠가 없고, 이렇게 잘 때 책 읽어주는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면 어떨 것 같아?(이쯤에서 그만했어야 했다.)
아들 : (울컥하며) 그만해, 그만해
나 : 아니, 아빠가 지금 옆에 있잖아. 만약에 없어서 다시는 못 만난다고 생각하면 어떨 것 같아?
아들이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며 울음을 그치질 않는다. 내가 괜히 먼 훗날의 일을 너무 일찍 이야기했나 보다.
나 : 알았어,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괜한 소리를 했네. 아빠 가온이 옆에 있어. 맨날 있어. 지금도 어디 안 가고 있잖아~
겨우 어르고 달랬다. 아들의 생각지 못한 반응에 사실 나도 놀랐다. 그렇게 서럽게 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들이 잠든 뒤, 거실에 나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분명 나도 초등학교 때 죽음에 대해 저렇게 반응을 했었던 것 같은데'라며, 다른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했으나 알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아빠는 왜 계속 찍고, 쓰냐며' 몇 번은 더 물어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대답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다 기억하고 싶지만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없으니 늘 기록해 두는 것'이라고.
모든 기록에는 '지금뿐인 지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이 배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무엇을 기록해야 하냐고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세요.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질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기록해두기만 한다면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지은이 김신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