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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르는 놈, 치우는 놈, 어질렀던 놈

따로 있었다

by 최승호

평소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거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때가 있다. 어렸을 때 육아 서적을 보면서 "혼자 치우기 힘들면 아빠한테 정리 도와달라고 말해줘"라면서 아주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육아 서적과 현실은 다르다. 육아뿐 아니라 10년 간 해왔던 학교폭력 업무도 이론과 현장은 달랐다. 휴일이면 하루에도 수십 번 허리를 굽혔다 펴면서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네."라면서 정리를 한다.


그렇게 말해놓고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내가 어렸을 적 집에서 수백 번 아니 수천번 들었던 말을 내가 되뇌고 있다니. 어렸을 적 기억이 많지 않은데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나중에 장가가서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서 당해봐야 한다고"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화근이었다. 요즘 보면 어디에서든 내가 뿌린 만큼 거둬들이는 것 같다. 그래서 크게 화가 나지도 않는다. 나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니까. 아이들 육아를 하면서 되려 부모님에게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내리사랑으로 보답한다고 할까.


아이들에게 크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뭐라고 해봤자 내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다. 속으로만 삭이면서 '너도 커서 네 자식 낳아서 당해봐라!'며 가벼운 주문을 외운다. 나의 주문이자 바람은 먼 훗날에 대한 것인데 또 가끔은 생각지 못하게 엄마, 아빠를 도와준다며 함께 정리를 한다. 속으로 주문을 외우던 내가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하루하루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이 육아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정리를 잘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책을 읽게 할 수 있을까?' 등의 고민을 많이 했다.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벌칙으로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도 해보았다. "자꾸 이러면 오늘 놀이터에 가지 않을 거야."라고 하자, 이제는 나에게 "그러면 나는 아빠 책을 읽지 못하게 할 거야."라고 반문을 한다. 그런데 잠깐, 아이들에게 아빠가 좋아하는 것이 '독서'로 인식이 되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바랐던 상황이었다. 아이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 개인 시간에 아이들에게 아빠가 책을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니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인식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리하라고 강요하고 압박을 하는 대신 내가 먼저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런데 이건 책 읽는 모습과는 또 다른 것이다. 각자가 가지고 논 것에 대해 자신이 스스로 정리를 해야 하는데, 해도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다. 치우고 있는데 바로 옆에 와서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일부러 나를 괴롭히나? 그래서 직접 물어본다. "아니, 아빠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라고 하면 예전에는 그래도 잠시 망설이기라도 했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더니 "응 맞아, 아빠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야"라며 눈웃음을 보이며 자기 방으로 도망을 간다. 그렇게 웃어버리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틈도 없다.


오늘도 꿋꿋하게 정리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어지르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다고. 누가? 어질렀던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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