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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인줄 알았습니다만

우리 집 거실이었습니다.

by 최승호

일요일 밤 21:00경, 딸은 진즉 재웠고, 아들을 재우려고 탈무드를 읽던 중, 윗집인지 아랫집인지 스타크래프트 음향을 얼마나 크게 틀어놨는지 질럿(스타크래프트 내 프로토스 캐틱터)이 공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입주를 하고 2년 6개월 동안 이렇게 게임하는 소리가 들린 적이 없었는데 그것도 수많은 게임 중에 그나마 내가 알만한 스타크래프트라니. "가온아, 누가 이 시간에 게임하나 보다.", "엥? 이 시간에 게임을? 얼른 자야지~"라고 하고는 마저 책을 읽다가 아들이 잠들었다. 그렇게 층간소음 아닌 환청인 듯 환청 아닌 질럿 소리를 들으며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는데 층간소음도 아니고 환청도 아니었다.


잠옷차림의 아내가 거실 테이블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었다. "오잉? 나는 윗집인가 아랫집에서 소리 엄청 크게 틀어놓고 스타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집이었네? 노트북으로 스타가 돼? 어떻게 설치했어?"라고 하자, 아내는 "신랑, 스타 할 줄 알아? 좀 알려줘봐 봐", "응 잠깐마 나 얼른 5km만 뛰고 와서 해볼게"


40분 뒤 집에 들어오자마자 계속해서 들리는 반가운 스타 소리. "지금까지 스타하고 있었어?", "응 얼른 씻고 와서 알려줘" 사실 내가 누구한테 스타크래프트를 알려줄 정도로 잘하진 않는다. 그래도 어디 가서 지고 오지 않는다. 지지 않는 쉬운 방법이 있다. 대결을 하지 않으면 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딜 가지도 않는다. 그래도 고등학교 동창들을 가끔씩 만나면 식사 후 PC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 개인전 말고 팀전은 종종 한다. 다들 실력들이 고만고만해서 그날 컨디션에 따라 승패가 결정 날 정도이다. 그렇게 가끔씩 스타를 하는 것 말고는 평소에 다른 게임은 하지 않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어디 가서 1대 1 말고, 팀전을 할 때 큰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방어하고 버텨서 1인분 몫은 하게 도와줄게" 하면서 각 종족별로 1게임씩 기본 빌드업 등을 알려주었더니 어느덧 12시가 되었다. 스타부부 아니 우리 부부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식었어야 했다. "신랑, 게임 못한다면서 생각보다 좀 하네?" 아내의 이 한마디에 늦은 시간임에도 우쭐한 나는 컴퓨터를 상대하면서 각종 유닛은 다 뽑고 급기야 캐리어 한 부대까지 뽑아서는 상대의 본진가지 쓸어버렸다. 내가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다니 그것도 12시가 넘은 시간에. 아내와 똑같은 잠옷차림에 나란히 앉아서 2시간 넘게 스타크래프트라니.


아내가 조만간 있을 팀회식에서 팀원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할 수도 있다며 노트북에 게임을 설치하다니 하루가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귀여운 모습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사진을 찍어두지 못했는데 내일 다시 앉혀놓고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놔야겠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귀여운 모습 이면에 또 게임마저 팀전에서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한몫은 하려는 책임감에 놀라며 마친다.


'역시 우리 집 가장은 아!내가 아니라 아내였다. 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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