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랑은 치사하리만큼 쉽지 않습니다만
어버이날 아침 우리 가족 채팅방, 흔하디 흔한 가족 채팅방이다. 여동생의 '부모님 은혜 감사합니다' 이모티콘을 시작으로 '우리 아들딸이라서 난 더 좋다'는 아버지의 답장, 바로 읽었지만 아이들 등교, 등원에 정신없어 한 시간 뒤에 별다른 말없이 '감사합니다'로 마무리한 나의 카톡 답장.
카톡을 보내고 12시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카톡방을 다시 봤다. '내가 너무 무뚝뚝하게 보냈나?', '감사하니까 감사합니다로 보냈으니 된 거지', '그래도 조금만 더 길게 쓸 걸 그랬나' 등 혼자서 만감이 교차했다. 내 자식들에게는 기상 직후부터 안아주고, 하트를 날리며, 사랑한다고 말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내리사랑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치사랑을 하면 좋으련만, 치사랑을 조금 한다고 해서 치사량에 도달하는 것도 아닌데! 어버이날에 한다는 한마디가 겨우 '감사합니다'라니. 아빠로서도 아들로서도 아직 멀었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딸을 픽업하러 갔는데 어린이집에서 보내준 어버이날 기념 티셔츠와 밥주걱 하나. 밥주걱에는 '밥값할게요'라고 쓰여있었다. 차에 타자마자 밥값을 하겠다는 딸. 그 순간 나는 '내 밥값은 제대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시동을 틀면서 한번 더 갸우뚱했다. 효도는커녕 내 몫, 내 밥값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버이날에 참 많은 생각과 자아성찰을 했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아들로서 잘해야겠다고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오후에는 상습 가출과 비행 행위로 인해 가정 내 부친과 소통이 단절된 2007년생 여학생과 면담을 했다. 가정 내에서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묻자, "아빠랑 대화가 없어요. 대화 정도는 하고 싶어요."라고 하여, "아버지 퇴근 시간에 맞춰서 방에서 나와서 인사부터 하면 되잖아"라고 했더니 "자존심이 상해서 먼저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한다. "아버님께서 너한테 서운하게 하거나 잘못한 부분이 있어?"라고 묻자, "아니요. 그런 건 없는데 그냥 제가 자존심이 세서 먼저 이야기를 안 하는 거예요." 순간 나는 "마침 오늘 어버이날이니까 얼른 집에 가서 아버님 퇴근하시기 전에 손편지랑 다이소에서 생화 5,000원에 파니까 집에 갈 때 사가면 되겠네. 자연스럽게 소통을 시도하는 거지!", "네, 해볼게요.", "그래, 꼭 그렇게 해보고도 아버님께서 아무 말 없으시면 위탁보호샘한테 말해줘"라며 면담을 끝냈으나 밤 11시가 넘도록 인증 문자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전문 이벤트 회사처럼 화려하게 이야기해놓고 정작 나는 어제저녁에 식사를 할 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고, 오늘 아침에도 '감사합니다' 달랑 카톡 하나 보냈다. 계속 외친다. 정말 내리사랑은 쉽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