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문안

by 김나윤

지구의 마지막 인간이 방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때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춘식은 화성에 이주했던 자식들이 드디어 찾아온 것으로 생각했다. 김춘식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부터 자식들에게 언제 병문안을 올 수 있겠냐고 전화했다. 만약 죽기라도 하면 그 전에 가족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사정을 모르는지 매번 일이 바쁘다는 답만 빠르게 하고 끊기 일쑤였다. 설날이나 추석 때도 찾아오는 법은 없었다. 그 후 전 지구인의 화성 이주 프로젝트가 실행된 뒤 화성에서의 병원비는 더 비싸다며 1인 병실에 그를 두고 떠났다. 그렇게 김춘식은 새하얀 점에 홀로 남겨졌다.


거동이 불편해 병실 밖을 나갈 수 없었던 김춘식은 매일 새하얀 벽과 이불만 쳐다보니 자식들의 얼굴도 새하얗게 지워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못 알아보기 전에 하루 빨리라도 만나길 소망해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바람이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춘식은 갈라진 목소리로 얼른 들어오라고 외쳤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들어온 것은 외계인이었다. 김춘식은 순간 헛것을 봤나 싶어서 계속 눈을 깜빡였다. 그런다고 무언가 바뀌는 점은 없었다. 김춘식은 눈을 크게 뜨고 외계인을 바라봤다. 표백제를 들이부은 것처럼 얼굴이 새하얗고, 탁구공을 박은 것처럼 커다랗고 새까만 눈동자를 제외하곤 인간과 똑 닮은 모습이었다. 김춘식은 몇십 년 전 시내 극장에서 자식들과 봤던 외계인 영화가 생각났다. 순 엉터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외계인이 있다니 당혹스러웠다.


김춘식은 이젠 혼자는 아니란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외계인은 그런 김춘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들이 버리고 떠난 지구를 점령하러 왔다고 했다. 김춘식은 잠시 이 일을 화성에 알려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자식들은 외계인이 왔다는 이유로 올 것 같진 않았다. 순간 김춘식의 머릿속에선 계속 바빠서 못 가겠으니 전화 좀 그만하라는 자식들의 아우성이 맴돌았다. 차라리 김춘식이 직접 화성으로 가는 것이 자식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계인에게 이왕 지구를 점령할 거면 자신부터 화성에 보내주고 하라고 부탁했다. 외계인은 당연히 해줄 거라는 기대를 부수듯 부탁을 거절했다. 인간들에게 우주선이 적나라하게 촬영돼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춘식은 화성으로 갈 수 없다는 얘기에 난감해했다. 순간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우주미아가 된 듯했다. 김춘식은 뒤늦게 병원에 입원했던 과거를 후회했다. 원래 김춘식은 중년 때까지 건강했지만 칠순을 넘기자마자 쇠약해졌다. 검버섯까지 피어나니 더욱 아파 보였다.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를 부양하기엔 부담된다며 김춘식에게 병원에 입원해달라고 했다. 김춘식은 처음엔 안 된다고 했지만, 주말마다 병문안을 오는 조건으로 입원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계속 지켜지지 않을 듯했다. 김춘식은 죽을 때까지 침상에서 자식들만 그리워하는 자신의 앞날이 그려졌다. 한순간에 서러워진 김춘식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동시에 자신은 잊고 우주 저편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자식들 생각에 화가 나고 부러워졌다. 괴로워하는 김춘식을 보곤 외계인은 안락사 주사를 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김춘식은 화가 나서라도 자식들에게 한소리는 하고 죽어야겠다고 거부했다. 외계인은 아픈 몸으로 자식들이 찾아오겠냐고 계속 그를 압박해왔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친 김춘식은 팔을 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김춘식의 구형 스마트폰에 알림이 떴다. 자식들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김춘식은 얼른 메시지를 읽어봤다. 그동안 일하느라 바쁜 데다 지구로 가는 관광 우주선이 없었는데, 이제 드디어 김춘식을 만나러 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김춘식은 딱딱한 글자를 읽고 있었지만, 자식들과 만난 기분이 들었다. 김춘식은 다시 마음을 되잡고 언젠가 병문안 올 가족들을 위해 병상에서 지구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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