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을 몰고 가다 보니 빽빽하게 세워져 있는 하얀 직사각형 아파트들이 보였다. 택배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듯했다. 저렇게 조그마한 곳도 옥탑방보다는 나아 보였다. 문을 열자 한참 틀어뒀던 에어컨 바람이 무색하게 금세 더워졌다. 어깨가 아플 때마다 갔던 불가마에 들어간 듯했다. 순간 종일 냉동창고에서 패딩을 입고 분류 작업을 하는 이들이 부러워졌다. 계절이 바뀌지 않은 뒤로 겨울은 그곳에서만 존재했다. 무더위를 꺾을 장마라도 왔으면 좋겠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한껏 먼지를 뒤집어쓴 택배들을 들어 카트에 실었다. 이곳저곳을 굴러 더러워진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듯했다. 무엇이 들었는지 팔이 나갈 것 같았다. 물가는 치솟아도 상자가 가벼워지는 날은 없었다. 목장갑도 서러운 듯 푹 젖어 들었다.
카트를 끌고 아파트 공동 출입문으로 향했다. 카트는 자신이 귀빈을 태우기라도 한 듯 쉬이 끌려오지 않았다. 팔은 끊어지기 직전 고무줄처럼 당겨왔다. 머리 위에서는 새하얀 햇빛이 나를 집요히 비추고 있었다. 모자를 쓴 것이 무색하게도 머리는 금세 달궈졌다. 서둘러 끌고 들어갔다. 여기는 거주민 외 엘리베이터 사용금지를 하다는 종이가 붙어있지 않았다. 상승 버튼을 누르자 열리는 철문 사이로 에어컨의 냉기가 불어왔다. 엘리베이터는 진동하며 상승했다. 냉장고에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이후 여러 층을 돌아다니며 문 앞에 택배들을 내려놨다. 계절이 바뀌지 않은 이후 사람들은 물 먹는 하마로 변했다. 투명한 페트병 속 물든 이미 한 번 끓어본 적이 있다기라도 하듯 뜨끈뜨끈했다. 중년 남자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욕설을 내뱉고 택배를 들여놓았다. 그러면 당일 배송으로 시키던지.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현관문은 이미 굳게 닫혔다. 꺾이지 않는 더위에 사람들은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도 시뻘게진 지 오래였다.
이제 옥상과 가까운 15층으로 갔다. 태양과 맞닿은 층은 유난히 더 뜨거웠다. 옥탑방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발이 날릴 때만 해도 난방비를 아끼려고 담요를 여러 겹 덮었었다. 하지만 밤마다 열대야를 겪으니 냉장고에 낀 성에처럼 매달림 고드름이 그립다. 목은 더 타들어 갔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목구멍을 들이키고 싶어졌다. 순간 문 앞에 간식 꾸러미가 잔뜩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택배 기사들에게 수고한다며 하나씩 가져가라는 글씨가 붙어있었다. 사막에서 우물을 찾았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황급히 걸어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거주민같이 보이는 사람이 나왔다. 그는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간식 꾸러미를 한가득 들었다. 지금 뭘 하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그를 불러세웠지만, 그는 자유롭게 가져가는 것이니 상관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목구멍은 갈라진 흙처럼 물을 달라고 더욱 아우성치었다. 그가 얼른 내려놓고 가길 바라는 마음에 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내 머리를 밥통으로 만들려는 듯 간식을 더 쥐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종종 택배 도난이 일어났던 것이 떠올랐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가져가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일지도 몰랐다. 내가 의심하는 것을 눈치채자 그는 황급히 캔 커피 하나를 던지고 복도 저 끝으로 달려가 버렸다. 나는 미지근해진 캔 커피를 쥐었다. 천대당하자 자외선을 강하게 쬔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랜 재수 끝에 대학을 포기하고 일한 지 몇 년이 되어갔지만, 익숙한 날은 없는 듯했다. 그를 붙잡고 간식을 되돌려 놓으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보내야 할 택배는 수두룩했다. 서둘러 카트를 끌고 하강했다. 카트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끌기 힘든 것은 변함이 없었다.
아파트 출입 현관문을 나와 트럭으로 돌아갔다. 새하얀 얼굴을 한 트럭은 자기도 땡볕에 지친 듯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워둔 지 몇 분 안 된 것 같은데 트럭 내부는 취사 버튼이라도 누른 밥솥 같았다. 창문을 살짝 내리고 에어컨을 가동했다. 아무도 나오지 않아 조용한 아파트 공터에 진동 소리만 요란히 울렸다. 나는 운전대를 쥐고 도로로 나섰다. 태양은 열기를 거둘 생각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