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흐르지 않았다. 김류하 씨의 영정사진에는 홀로그램 국화가 놓였다. 수많은 고인들 사이에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빨리 나오라는 재촉에 유가족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나왔다. 그의 장례식도 요즘 세상이 그렇듯 1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다.
코로나19 탓에 조문은 할 수 없어서, 복도를 걸어 다니며 빈소를 흘낏 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존재감이 워낙 없었던지라 그의 빈소를 서성이는 직원은 나밖에 없었다. 액자 속 김류하 씨는 익숙한 모습이다. 말끔한 가르마와 검은 정장. 직원들 사이의 지침이다. 같은 제품인 나의 정장도 몸에 안 맞게 된 지 오래되었다. 흘러가지 못하고 검은 정장과 액자에 가둬진 김류하 씨를 보고 있으니 그와 퇴근했던 때가 떠올랐다.
지난여름, 숨 쉴 틈 없는 장례 탓에 막차를 놓쳤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너무 늦었다고 퇴근했다. 차가 없었던 우리는 서둘러 시내로 가려고 그나마 빠른 길인 산비탈을 올랐다. 정장에 땀이 차는 걸 참고 오르던 중 쿠르릉하는 소리가 들렸다. 별안간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장마전선이 벌써 올라올 줄 몰랐기에 비좁은 초소로 냅다 뛰어갔다. 김류하 씨에게도 빨리 들어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우비를 사 오겠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늘 작은 목소리만 냈던 그였기에 당황했다. 뒤늦게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김류하 씨는 이미 험난한 길을 흐르는 폭포처럼 뛰어가 버렸다. 늘 피곤해하고 지쳐있던 그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었다. 이십여 분이 지난 후 나는 그가 그대로 집에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우비를 가져왔다. 축축해진 손으로 해맑게 비닐 우비를 내밀 땐 놀라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다. 무사히 산을 내려가 보도블록 위를 걸어가고 있을 때, 그는 구두를 신은 채로 웅덩이 위를 뛰어다녔다. 매일 죽음을 접하는 게 익숙지 않던 그가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다른 동료들도 봤다면 김류하 씨가 항상 한 곳에 고여있고, 시키는 대로만 사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어디든 흘러갈 줄 아는 사람이란 걸 느꼈을 텐데.
텅 빈 장례식장에 울리는 흐느낌과 매캐한 향냄새를 계속 맡으니 머리가 아팠다. 밖으로 나가보니 비행기가 기류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이젠 언제가 흘러갈 날을 꿈꾸며 퇴근하던 이는 여기에 없다. 순간 김류하 씨의 죽음에 무관심한 직원들을 붙잡고, 김류하 씨는 직장에 조용히 고여있던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흐르던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장례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영정사진을 떠올리며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