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by 김나윤

가까운 것만 또렷이 보이는 나날이 지속했다. 먼 것은 뿌연 김이 서린 듯 흐리멍덩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보고 유튜브에서 눈 운동을 따라 해봐도 나아지는 점은 없었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다 안경원에 들렀다. 안경사는 시력검사 판 앞에 서게 했다.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는 화면에는 검고 조그마한 알갱이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안경사는 가느다란 쇠 막대기로 알갱이들을 짚으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4, 아래로 향한 말굽 따위를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내려갈수록 저것이 비행기인지 새인지 쉽사리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분명 숫자이지만 6인지 8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른 쪽 눈을 가려도 결과는 같았다. 안경사는 이만하면 됐다며 굴절 검사기 앞으로 데려갔다. 턱을 맞추고 눈을 갖다 댔다. 곧바로 장활한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 한가운데에는 하얀 울타리 길이 곧게 뻗어 나 있었다. 시야를 살짝 위로 올리자 그 끝엔 빨간 지붕의 집이 있었다. 모든 것들이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고 하다못해 떨어진 낙엽도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도시와는 다른 정반대였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보니 좀 더 머물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제 떼도 좋다는 말과 함께 나는 현실로 돌아갔다. 나는 최대한 저렴하면서 얼굴에 큰 변화를 주지 않으려는 테를 골라 안경을 맞췄다. 안경을 쓰니 거리 감각이 상실된 듯했다. 안경사는 처음엔 어지러울 수 있으나 좀 쓰면 적응한다고 했다. 안경은 십 만 원대, 수술하는 것보단 저렴했다. 코와 귀에 얹힌 느낌이 불편하지만 앞을 제대로 못 봐 떠안는 책임보단 가벼울 것이다. 밖으로 나와보니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얼른 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제 움직이려는데 룸미러에 낯선 얼굴이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삼 십 년 전 피곤함에 찌든 몸을 이끌고 문을 넘어왔던 그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반가움과 회한에 잠겨 룸미러를 향해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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