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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May 05. 2020

취향을 발견하는 일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살기


 자취를 시작하고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되면서, 살면서 처음으로 내 취향만을 반영한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옵션이라고는 티브이와 침대, 작은 화장대가 전부였던 방이었기에 내가 사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인터넷과 오프라인 매장을 번갈아 비교해가며 마음에 드는 가구와 소품들을 찾는데, 의외의 난관에 부딪혔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지 아니면 심플한 걸 좋아하는지 등 그때까지 나는 정말 내 취향을 모르고 살았다.


 방의 구색을 갖추는데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흰색 책상과 의자를 온라인으로 이케아에서 주문했고, 회색 침구세트도 한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그렇게 방의 제일 큰 느낌을 좌우하는 것들을 고르고 나니 다음은 조금 수월했다. 회색의 체크무늬 패턴으로 된 빈티지한 느낌이 나는 커튼을 매달았고, 오래된 티브이 탁상 위에는 흰색의 빈티지한 식탁보를 사서 깔았으며 종이 달력과 모아놓은 엽서들로 벽을 꾸몄다.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하나 샀고, 숲의 시원한 향이 나는 향초도 샀다. 혼자 자며 악몽을 꾸지 않을까 걱정되어 하얀색의 드림캐처도 사서 커튼봉의 끄트머리에 걸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가 회색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회색으로 된 물건을 사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방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회색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았다. 빈티지한 느낌이 나는 물건들을 좋아한다는 것도, 달달하거나 상큼한 향보다는 무겁고 시원한 향을 좋아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21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나 스스로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밥 한끼를 먹을 때도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게 되었다. 아침으로는 밥보다 빵이나 샌드위치를 먹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점심 먹고 태워 마시는 아이스 커피가 가장 맛있다는 것을, 나는 순두부찌개와 계란후라이가 제일 좋은 한식파라는 것도 혼자 살면서 처음 마주한 내 취향들이다. 파스타를 만들때면 내가 좋아하는 양파와 햄과 청양고추를 마음껏 때려놓고 만들었다. 혼자 사니 자연스레 매 끼니 때면 '오늘 점심으로 뭐먹지? 오늘 저녁으로 뭐먹지?'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더라. 그러면 내가 지금 어떤 음식이 땡기는지, 뭐가 먹고싶은지 자연스레 생각했다. 집에서 부모님이 차려주는 밥을 함께 먹을 때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취향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만큼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거니까.


 취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기도 하고, 처음에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로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처음에 회색의 침구세트를 구입했을 땐, 방이 분위기 있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2년쯤 지나고 나니 그 회색 침구 때문에 방 분위기가 어두운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었다. 괜찮다. 2년 뒤에 밝은 하늘색의 침구를 사서 바꾸었다. 취향은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끔은 취향을 고르는 데에도 실패가 있어야 내가 생각보다 이걸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다.


 내 취향을 완벽히 반영한 나의 자취방은 그 뒤 4년 동안 그 공간에 들어갈 때마다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비록 작은 방이었고, 그래서 놓을 수 있는 가구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공간이 좋았다.   


 혼자 산다는 건, 몰랐던 내 취향을 계속해서 발견해 나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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