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담 Apr 30. 2020

시내는 처음이라서

 대구에 가서 처음 들어본 말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시내'라는 표현이었다. 서울에서는 친구들이랑 만나자 하면 장소가 바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잠실이나 성수, 홍대, 강남 등 매번 만날 때마다 장소가 달랐다. 그런데 대구에서는 수업이 일찍 끝난다거나 하는 날이면 "오늘 시내 갈까?"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 시내가 어디냐는 나의 물음에 동기가 대구 시내는 동성로라고 가르쳐줬다. 당시 자취를 처음 시작하면서 나는 '혼자서도 잘해요' 병에 걸려 있었다. 무언가 처음 하는 일을 혼자서 해내고 나면 굉장한 성취감을 느끼고, 어딘지 남의 도움 없이 그런 일들을 척척 해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한 병. 그래서 대구에 왔으니 혼자 시내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상시 굉장한 프로계획러다. 친구랑 약속을 잡으면 어디 갈지 카페나 식당을 미리 다 찾아보고, 그 카페나 식당이 화장실은 가게 내부에 있는지, 메뉴는 뭐가 있는지, 브레이크 타임이나 휴무는 언제인지까지 다 찾아보고서 가야 마음이 편하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그런 일과에서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혼자 동성로에 가겠다고 다짐을 하고서, 혼자 가기 좋을법한 카페와 식당, 또 간 김에 쇼핑도 하고 싶어서 들러야 할 옷가게 등을  서칭 해서 전부 핸드폰에 기록해뒀다.


 계획한 토요일 오후가 되고, 좋아하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향수도 살짝 뿌리고 나갈 준비를 했다. 가방엔 보조배터리, 화장품이 담긴 파우치, 지갑, 이어폰을 챙기고 빼먹은 건 없는지 다시 확인까지 한 후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고 장장 한 시간 넘는 시간을 달려 반월당역에 도착했다. 평소에 한 시간이었으면 꽤 먼 거리였겠지만, 그 날은 처음 대구 시내에 가본다는 설렘 때문인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지하철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반월당에서 내리더라.


 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카드를 찍고 나와 출구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그때 처음 가 본 반월당역은 진짜 컸다. 진짜 크고, 사람이 정말 많고, 길이 많아 복잡했다. 반월당역은 출구가 23번까지 있다. (나중에 서울에서 강남역을 가보고 반월당역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반월당역이 살면서 가 본 지하철역 중에 제일 컸다!) 생각보다 너무 크고 복잡해서 당황했지만, 광장에 그려져 있던 지도를 보고 표지판을 따라가니 찾으려던 출구가 있었다.


 출구 밖으로 나와서 본 풍경은 정말 시내라고 부를 법하네,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정말 많았고, 번쩍번쩍거리는 간판이며 시끄러운 음악소리며 복작복작했다. 네이버 지도를 켜고 길을 찾으려는데, 누군가 내게 저기요 하고 말을 걸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서있었다. 왜요? 하고 물으니 자기들이 대학 조별과제를 하는데, 요즘 대학생들의 취미에 대한 설문조사 표본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시내에서 이렇게 물어보고 다닌다며 잠깐이면 되니 도와줄 수 없겠냐고 하더라. 설문조사면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텐데 딱해 보이니 도와줘야겠다, 싶어 알겠다 하니 핸드폰을 꺼내 본인들이 하고 있는 과제에 대한 설명을 유창하게 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읽고 예상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한 사이비 종교의 전형적인 전도 수법이었다. 당시에는 정말 몰랐다. 한 번 경험하고 나니까 그 뒤로는 동성로에 갈 때마다 그때의 나처럼 곤란한 표정을 하고 붙잡혀 있는 사람들이 보이더라.


 그 날 내가 완벽하게 세웠던 계획은 지키지 못했다. 그 사람들한테 잡혀서 한참을 얘기를 듣다가 마침 친구한테 온 전화에 연기를 하며 겨우 그 상황을 벗어나고 나니 갑자기 좀 무서워졌었다. 갑자기 내가 서 있는 그곳이 너무나도 타지 같았다. 이질감이 들었다.


 그 뒤 학교를 다니면서 동성로는 수없이 많이 갔다. 동기들과 막차가 올 때까지 술을 마셔보기도 했고, 골목 구석에 있는 조용하고 예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대구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기도 했다. 갈 때마다 처음 시내에 혼자 와서 어리바리 허둥대던 그 날이 생각났다. 그때 내가 대구 처음 와 본 서울 촌놈인 티가 났던 걸까?


  

이전 03화 취향을 발견하는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