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가족들과 앞으로 엄마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며칠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해보자고 했다.
우리의 욕심대로 계속 항암치료를 할 것인지, 아니면 엄마의 바람대로 치료를 잠깐 멈출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요양원, 요양병원, 그리고 친정집 바로 앞에 있는 호스피스 병원까지 전화를 걸고 찾아가서 상담을 받아보았다. 엄마의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간병하기로 한 일주일의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낼모레면 내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내 뒤를 이어 엄마를 간병할 아빠를 위해 엄마의 살림들을 하나하나 노트에 적고 사진을 찍어두었고 엄마의 하루 일과를 정리해 두었다. 엄마가 섬망증상으로 자꾸 잊으시는 것들이 많아서 그 내용들을 종이에 적어 엄마발치에 테이프로 붙여두었다.
내가 정리를 할 때마다 엄마는 점점 말수가 적어지셨다. 딸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편하고 제일 좋으셨는데 딸이 낼모레면 옆에 없다는 것이 엄마를 불안하게 만든 듯했다.
2-3주 뒤에 다시 오겠다고 엄마한테 계속 말씀을 드려 안심을 시켜드렸지만 엄마의 표정은 좋지가 않았다.
그래도 엄마랑 얘기도 많이 하고 일주일 동안 엄마 옆에서 있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내 몸이 피곤한 것보다 엄마옆에서 오랜만에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는 것이 참 좋았다.
그러고 보니 결혼생활 20년 동안 엄마랑 둘이 여행 한번 가지 못한 것이 참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엄마와 약속을 했다. 엄마 몸이 좀 좋아지면 휠체어를 타서라도 같이 여행을 가자고 말이다. 그러니까 엄마는 치료 잘 받고 잘 드시고 잘 지내서 빨리 좋아질 생각만 하시라고 계속 말씀을 드렸다.
내가 집으로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엄마한테 계속했던 잔소리들을 신신당부하고 엄마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엄마,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2주 후에 또 올게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일주일 동안 친해졌던 요양보호사님들과 병실에 계신 어머니들이 엄마자리로 다 몰려오셨다. 그리고는 엄마한테 노래도 해주시고 재미있는 말도 해주시면서 나보고 빨리 가라고 하셨다. 엄마가 마음이 약해져 눈물이 날 수도 있으니 기분 좋게 가라고 말이다.
어찌나 감사하고 감동스럽던지. 엄마한테 "엄마, 나 진짜 갈게. 갔다가 금방 올게."라는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