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넝숴>, 김연수
김연수의 단편 <뿌넝숴>는 不能說, ‘말할 수 없어요’라는 뜻의 중국어다. 소설은 중공군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인의 독백으로 이뤄진다. 곳곳에서 되풀이되는 말, 뿌넝숴. 뿌넝숴. 말할 수 없어요. 말할 수 없어요. 대체 무엇을 말할 수 없다는 걸까.
화자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부상을 입고 버려진다. 그러다 한 여인을 만나는데, 여인과 혹독하지만 꿈결 같은 나날을 보낸다. 여인은 조선인민군이었지만 전쟁에 환멸을 느껴 대오를 이탈한 참이었다. 목숨 걸고 참전한 전쟁을 포기하고 여인이 선택한 건, 생전 처음 보는 한 낯선 이방인의 목숨이었다. 모두가 화자를 버리고 떠날 때 여인은 그와 함께 남는다. 그리고 모든 걸 그에게 준다. 화자는 손가락을 몇 개 잃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대체 여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어보는 질문에 화자는 뿌넝숴. 뿌넝숴. 말할 수 없어요, 란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어찌 이야기할 수 있으랴. 그의 눈엔 “몸소 역사를 겪어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뿌넝숴라고 말해도, (...) 거기에다 논리를 적용해 앞뒤를 대충 짜 맞추고는 한편의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역사학자들은 한갓 무지렁이일 뿐이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일백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중국과 남한은 왕래하며 지내고 있지 않은가. 화자는 (아마도 작가 본인에게) 말한다. “고작 일백 년도 지나지 않아 망각할 그런 따위의 사실을 기록한 책과 기념비라니. 그게 바로 지금 자네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아닌가? 그런 책 따위는 다 던져버리게나.”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책에 씌어진 얘기가 아니라 두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뿌넝숴. 뿌넝숴. ‘말할 수 없어요.’ “그런 말이 터져 나올 때까지 (...)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라고 말이다.
이야기를 짓기 위해 여러 사료들을 뒤지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작가에게 <뿌넝숴>는 한편의 긴 다짐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대개 역사의 장대함 앞에 주눅 들기 마련이고, 끝 모를 복잡함 앞에서 기가 죽기 마련이거늘 어찌 비난만 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말할 수 없는 이야기, 미처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건, 그런 이야기야말로 일백 년이 일 백번 지나도 여전히 진실로 살아 있는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