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소설』, 제임스 미치너
소설(상),(하), The Novel, 제임스 미치너(윤희기), 2009(원작 1991)
소설은 왜 읽을까
제임스 미치너는 미국에서 태어나 90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60여 년간 25권 이상의 장편 소설을 썼으며 퓰리처상도 수상한 바 있는 관록 있는 소설가다. 우리나라에는 열린책들에서 발간한 장편소설 『소설』 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게 딱히 그의 대표작은 아닌 듯하다. 『소설』은 한국에서 쇄를 거듭하고 판형도 바뀌면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았는데, 아마도 이처럼 '소설'이란 세계를 본격적이고 대중적으로 다룬 작품이 많지 않아서가 아닐까.
『소설』은 당연하게도 '소설'의 세계에 대해 다룬다. 상, 하권으로 나뉘어 전체 분량이 상당한데 "소설가 - 편집자 - 평론가 - 독자", 이렇게 네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이 흐름은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수용되는지에 대한 순서이기도 하다. 과연 소설가가 들려주는 소설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소설 내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루카스 요더는 펜실베니아 독일인 이민 가정에서 자라난 '소설가'다. 펜실베니아 독일인 커뮤니티를 다룬 그의 시리즈 《그렌즐러 8부작》은 십수 년 동안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6부에 이르러 기적적인 히트를 기록하고 키네틱 출판사의 대표작이 된다. 그의 소설이 오랫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다 빛을 바라본 건, 편집자 '이본 마멜'의 탁월한 안목과 신뢰 덕분이다. '편집자' 편에는 유대계 출신 여성인 이본 마멜이 어떻게 책의 세계에 매혹되어 편집자로 성장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안에는 소설 또한 누군가의 노동의 산물임이 여실히 드러나있다. '소설가'에서 '편집자'로 이어지는 (상)권은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한 편의 잘 읽히는 이야기다.
(하)권에는 책이 세상에 나와 유통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소설의 고급 독자라 할 수 있을 '비평가'이자 문학 교수인 칼 스트라이버트는 괴짜 교수로 유명하다. 스승의 영향을 받은 거침없는 비평은 루카스 요더에게 적대적이지만, 그는 루카스 요더의 성공 덕분에 재정이 넉넉해진 출판사 사정 때문에 자신의 책을 낼 수 있는 비주류의 비평가다. 그는 문학의 엘리티시즘을 표방한다. 요컨대 소설이란 앞서가는 탁월한 예술가가 대중들에게 내려준 비의(秘義), 빛의 세례다. 이러한 생각의 정반대 지점에 '독자' 제인 갈런드가 서 있다. 제인 갈런드는 소설은 우선 잘 읽혀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춘 성실한 독자인데,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손자와 소통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어간다. '비평가'에서 '독자'로 이어지는 (하)권은 소설은 어떻게 수용되는가,를 넘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또는 문학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커다란 이야기다. 엘리티시즘과 비엘리티시즘, 요컨대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독자인 갈런드의 변화는 은근히 작가의 입장에 동조해가는 듯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일반 대중들은 알기 어려운 소설의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아주 잘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수십 년간의 작가 생활 중 후반부에 발표한 작품이라 그런지 긴장감을 지속시키거나 새로운 소재들이 끊임없이 환기된다는가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 소설가가 쓴 '소설'이라 그럴까. 소설에 대한 관점은 다소 과대평가되었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느 정도 교조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내내 등장하는 문학에 대한 두 입장 중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서 있을까. 종종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봐도 좋겠다. 소설은 왜 읽는가, 소설을 읽으며 얻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면 소설은 왜 읽어야 하는가, 소설을 읽고 난 후와 읽기 전의 나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 혹은 달라야 하는가. 소설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