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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Apr 23. 2021

흔적

손으로 얼음을 만지고 있으면 만졌던 손마디마저 얼어붙을 정도로 얼얼하고 아프다. 장미 가시 또한 아프기 매한가지다. 심통 맞은 아이 입술처럼 뾰족이 내민 듯한 가시에 찔리는 것은 따끔하다. 200송이가 넘는 이파리를 전부 쳐내고 비닐로 싸서 리본으로 묶는 작업을 하고 손가락을 보니, 아주 작고 검은 흔적들이 촘촘히 찍혀있다. 손가락 10개가 모두 얼얼하다.


꽃을 사는 입장이었을 때엔 마냥 이쁘다 하며 꽃을 사곤 했는데, 직접 꽃을 만지고 보니 손이 많이 간다. 손이 많이 가는 것과 비례해서 꽃에 의해 상처를 많이 받는다. 가시가 있는 장미가 더욱 그렇다. 


꽃을 만지면서 자유자재로 손을 놀릴 수 있을 때쯤이면 손엔 얼마나 많은 꽃에 의한 생채기들이 훈장처럼 새겨져 있을까. 털어서 먼지가 안나는 사람은 없다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쓸고 간 자리나 사람에게 흔적을 남기게 된다. 눈에 보이는 흔적은 그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를 깨끗이 닦아내면 그만이지만 마음에 난 흔적은 닦음질이 어렵다. 


말 한마디의 실수로 상대방의 가슴 깊은 곳에 대못을 박기도 한다. 반면에 오랫동안 따뜻하고 정겹게 남아 있는 사랑의 말도 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장미 가시처럼 따끔한 상처를 받은 즉시 금세 아물 수 있게 하는 넉넉한 가슴 하나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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