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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Dec 31. 2021

십이월- 제대로 된 인사를 한다는 것.

문화 소비 기록 [문화 일기 2021] 12월 호

한 달 동안 소비한 문화 콘텐츠를 기록하고 소개하는 [문화 일기 2021]의 마지막 호!

12월 호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올해의 마지막까지 따뜻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1. 십이월의 영화

- 나는 조선사람입니다(2021): I AM FROM CHOSUN

재일 '조선인'. 그들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사를 가지고 생겨났고 무엇 때문에 이미 사라진 '조선'을 조국으로 삼으며 일본 사회 내에서 차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등을 담고 있는 재일 조선인 다큐멘터리이다.


김철민 감독이 오랫동안 찍어온 재일 조선인들의 영상이 엮여 하나의 영화로 완성된 느낌이라, 영화 초반부에 등장했던 어린아이가 영화 후반에는 어엿한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게 또 하나의 재미 요소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디아스포라나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관심보다도 안창림 선수의 GV를 보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안창림 선수가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저 응원 차 GV에 등장한 것뿐. 디아스포라에 대해서는 대학 교양 수업에서 잠깐 언급된 것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를 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생각이 계속 달라지는 걸 느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나 역시도 왜 이들이 사라진 국가인 '조선'을 조국으로 삼는지, 차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조선적(조선 국적)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북한 쪽 교육을 받는 건 아닌지 등등 무지에서 비롯된 의문들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이 재일 조선인으로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단순히 사라진 조국을 쫓는 사람들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차별 속에서 치열하게 민족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재일 조선인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과 그 가족들이 광복과 동시에 이뤄진 분단으로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상황이 안정되고 나서 돌아가자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결국 돌아가지 못한 채, 식민지 조선인으로 끌려왔던 본국(일본)에서 무국적자, 외국인이 되어버렸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해방되자마자 분단되어 사라졌으므로.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조선'이라 생각하며, 지금으로서는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 두 개의 조국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출신 지역과는 상관없이 하나의 조국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조선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에게 조선학교는 단순한 학교가 아닌 고향, 집과 같다고 한다. 이런 그들의 학교에 일본 극우파들은 물러가라며 침입을 하고 시위를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며 놀랐던 점은, 7-80년대 대한민국에 '조국 유학'을 온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 중 상당수가 간첩조작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아 20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역사적 사실을 부끄럽게도 배운 기억이 없다. 교과서 속 지나가는 한 줄이라도 스친 기억이 없다. 물론 내 기억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한국사 공부를 했음에도 그 시기 대통령의 대북정책, 선거제도, 경제성장 등을 배운 기억은 없어도 간첩조작 사건을 배운 기억은 없다. 어째서일까. 교과서와 공교육에서도 다루는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아직도, 왜곡된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뿌리를 찾기 위해 유학을 왔다가, 간첩으로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를 받던 재판장에서 간첩이기 때문에 생존을 허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던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강종헌 씨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제대로 된 인사를 한다는 것.

1인 가구 가장으로서 놓칠 수 없었던 제목의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사회성이 살짝 부족한 걸 제외하면 지금의 한국 1인 가구들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준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하이퍼 리얼리즘 수준으로 말이다. 하루 종일 이어폰을 꼽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만(일을 할 때) 말을 하고, 영혼 없이 일을 하고 편의점에서 대충 도시락을 사고 돌아와 휴대폰을 보면서 밥을 먹는 그런 일상을 살고 있는 진아(공승연)의 이야기이다.


진아의 이야기이지만 진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제목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인사를 건네는 이웃집 사람이 불편하고, 집이 살짝 흔들릴 만큼 쿵하는 순간이 있어도 자신이 안전하고 별다른 일이 이어지지 않으면 구태여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일을 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딱히 입을 떼지 않는 너무 평범한 일상. 진아는 콜센터 일을 하면서 영혼 없이 진상 고객들에게 사과의 말로 응대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정말 감정이 없는 기계인 것은 아니다. 그도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영화 말미로 갈수록 꾹꾹 눌러 담았던 진아의 감정이 터지는 듯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늘 건조하던 진아가 화를 내고 울면서 사과하라고 외치던 모습이 인상 깊다.


영화를 보면서 책이 상처를 입히면 그냥 상처를 받는다던 황정은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영화를 보다가 영화가 나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냥 받는 것 같아.



- 돈 룩 업(2021): 현실이 아닌 그저 '디스토피아' 영화이기를.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가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크기의 혜성을 발견하고, 담당 교수인 민디 박사와 함께 충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으로 찾아간 미국 대통령은 충돌이 6개월 남짓 남았다는 말에도 중간 선거가 무사히 지나가기 전에는 가만히 앉아서 파악하고 있자는 말을 하고, 이 소식을 들은 주요 언론사도 가십거리를 다루는 방송에 짤막하게 내보낼 뿐이다. 6개월 뒤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혜성 소식을 단순한 농담처럼 치부하고 지나가는 방송에서 케이트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고, 그런 그의 진심 어린 모습은 조롱되어지고 인터넷 상의 '밈'이 된다.


그 후, 스캔들로 인해 지지율이 낮아지자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혜성을 파괴할 로켓을 쏘아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그 작전은 혜성에서 천문학적인 광물 자원을 발견한 인류 최고 부자에 의해 중단되고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급기야 혜성이 없다는 음모론과 가짜 뉴스를 믿기도 한다. 시간이 다가와 혜성이 하늘 위에 선명하게 떠오른 순간까지도 룩업(하늘을 보고 혜성의 존재를 인정한 후, 로켓을 쏘아 없애자.) 파와 돈룩업(혜성충돌설이 거짓이라는 파와, 혜성을 쪼개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함) 파로 나뉜다.


모든 게 농담처럼 넘어가지는 사회에서 진지하게 진실을 말한 사람이 밈이 되고, 힘을 얻지 못하며 sns에서는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판치는 세상이 낯설지 않다는 점이 씁쓸했다. 엔딩마저도 현실적이었던 것 같다. 슬프진 않았다. 정말 최선을 다했으니까.



- 기적(2021): 반전에 반전

간이역도 없는 시골 동네에서 사는 준경(박정민)이 같은 반 라희(임윤아)와 함께 동네에 간이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이역"이라는 소재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고, 역을 만들기 위한 내용으로 전후반이 채워지지만 단순히 그 내용만 있는 건 아니다.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기도 하고, 역을 만드는 걸 도와주겠다며 시작한 라희와의 인연이 사랑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아날로그 사랑? 전화를 하고, 편지를 하는 그 시대 사랑의 귀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윤아 분량이 생각보다 없어서 아쉬웠다.



2. 십이월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OyMIOMU2jdI

kyo181, 실리카겔

kyo야 ㅇㅇ는 해봤니로 이어지는 노래인데 특이하고 몽환적인 멜로디가 계속 맴돈다.

kyo에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Kyo야 사랑을 해봤니
Kyo야 이혼은 해봤니
Kyo야 꿈을 꾸어봤니



3. 십이월의 책

- 아몬드(손원평)

한 줄 후기: 자 이제 누가 사이코패스고 누가 감정 불능이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이수'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된다.  반 아이들과 사람들은 감정을 못 느끼는 이수를 괴물이라 말하지만, 이수의 관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 독자인 나는 굳이 괴물을 하나 말해야 한다면 그건 '평범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받기 위해 이수에게 할머니 죽은 걸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냐고 묻고, 곤에게 도난 사건을 뒤집어 씌우고서는 반응이 궁금했다고 말하는 애나, 그걸 지켜보면서 그저 말이나 얹으며 곤에게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은 다른 애들이나.


연쇄 살인을 저지른 남자의 서사에 주목하여 남자의 손에 죽은 피해자들이 있는 엄연한 사건을 사회의 문제로 이야기하며 동정 여론을 펼치는 사람들마저도. 모두 정상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런 사회 속에서도 도라와 곤 같은 아이들이 이수의 곁에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결말을 보면서 감정을 느끼는 게 굳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45쪽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 아가미(구병모)

솔직하게 말하면 내 감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술술 읽혔다. 독백체가 대부분인데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정말 신기해. 아몬드에 이어 여기서도 '곤'이라는 인물이 나와서 신기했다.

곤아 행복하렴. 너의 아가미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물속에서 자유롭기를. 살아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이야기했던 강하와 드물지만 어색한 온기를 가져다주었던 할아버지를 만나면 어디든 행복하고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곳으로 떠나기를 바라.


166쪽
당신이 이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강하가 당신을 특별히 좋아하고 아꼈다고는 말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싫어'라는 건 반드시 증오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달리 표현할 말이 마땅치 않아 싫다는 것뿐이지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에요. 그 막연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 가운데 가장 범위가 넓은 거라고 봐요.


- 디아스포라의 눈 (서경식)

약 13~4년 전에 저자가 연재한 칼럼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보니, 그 시기를 초등학생으로 보내 굵직한 사건이 아니면 기억이 나지 않는 나에게는 약간의 시간의 벽이 느껴졌다.


시간의 흐름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러니까 지금의 한국 사회의 모습과 동일하다고 볼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일 조선인으로,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저자가 이야기하는 디아스포라 이야기와 한국 사회 이야기 등을 알 수 있었다.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사람이 새롭게 쓴 글을 읽고 싶다.  


6쪽(머리말)
세상사를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한 개인이나 사회가 건전함을 유지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필자로서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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