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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Dec 24. 2021

십일월- 사랑이 내게 있으니,

문화 소비 기록 [문화 일기 2021] 11월 호 - 글과 음악 편 

크리스마스이브에 올리는

십일월에 읽었던 글과,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



3. 십일월의 글

- 일기(日記)(2021), 황정은: 사랑이 내게 있으니, 사는 동안엔 내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작가 황정은의 첫 번째 에세이집으로 최근에 출간되었다.


고등학교 일 학년이던 열일곱에,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처음 접하고서는 그 뒤로 쭉 황정은의 책을 읽어온 나에게 <일기>는 그의 첫 번째 에세이집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구매하여 읽을 가치가 차고 넘쳤다. 그의 세계가 궁금했다.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기에, 이런 감성과 이런 세계를 쓰는지 알고 싶었다. 책 너머에 있는 작가가 궁금한 '마음'으로 읽었고, 좋은 기회로 창비에서 진행한 북토크도 다녀왔다. 


책을 다 읽지 않은 상태로 북토크를 갔기 때문에 황정은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읽음으로써 겪을 아픔이나 고통에 대해서 걱정을 했다고 말했을 때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그런 '트리거'가 될만한 내용이 없어서일까. 그는 분명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윤리적인 사람이라. 한편으로는 예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님을 알린다.) 독자들의 마음에 많이 신경을 써주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자마자, 이 생각이 정말 내 멋대로 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황정은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지지 않기 위해 연재를 시작했고, 그 글을 묶어 출간한 이 책을 쓰는 동안 즐거웠다고 했다. 물론 허구의 이야기라 주장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세상에 드러낸다는 것에 대한 부담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나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고 답하고 싶다. 즐거운 내용이 담긴 것은 아니나,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사랑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그 마음들을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사랑이 존재함을 이야기한다는 게. 


사람들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건강하시기를.' 이 말을 마지막 인사로 끝내는 황정은을 잘.. 모르겠고 앞으로도 그의 글을 찾아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작가가 좋다. 


160쪽 (고사리를 말리려고)
그래도 나는 자주 바란다고 말하고 믿는다고 말한다. 예컨대 당신의 건강을 바라고 사람의 선의를 믿고 굳이 희망하는 마음을 나는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겠다는 믿음 말고, 희구하며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믿음이 아직 내게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이 내게 있으니, 사는 동안엔 내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197쪽(작가의 말)
문학을 주어로 두지 않고 목적으로 두고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문학을 나는 늘 좋아했고 그것이 내게는 늘 최선이었습니다. 




-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2021), 피에르 베르제: 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주변의 모든 것들에 너의 이름을 써.



'너의 이브'라는 말로 끝났다던 이브 생 로랑의 편지와

'나의 이브'라고 칭하는 피에르의 편지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평생의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가 이브 생 로랑의 죽음 이후 일 년 간 그에게 써 내려간 편지들을 엮은 책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쓰면서도 결국 모든 게 오로지 '이브'로 이어지는 편지를 보면서 그의 삶의 주체는 이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이브 생 로랑'을 통해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들의 관계 또한 알게 되었지만, 그들이 50년 동안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이며 연인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브 생 로랑에게 부치는 피에르의 편지를 통해 그들이 나눈 사랑에 대해, 영화 속 이브가 피에르에게 '내가 사랑하는 건 다른 남자지만 내 인생의 남자는 너'라고 하던 그 말이 그들의 관계 속에서는 사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긴 시간 동안 서로가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맹목적인 사랑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결국 돌고 돌아 끝내 결코 벗어난 적도 없는 사람과 함께하는 그런 사랑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또 이브 생 로랑이란 사람의 삶과, 디자이너로서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알 수 있었다. 


144-145쪽
그리고 바라건대, 이 글이 너의 재능, 너의 취향, 너의 명민함, 너의 다정함, 너의 부드러움, 너의 힘, 너의 용기, 너의 순수함, 너의 아름다움, 너의 시선, 너의 청렴함, 너의 정직성, 너의 고집과 욕구를 보여주기를. 너를 걸을 수 없게 했던 그 '거인의 날개'를.
*
엘뤼아르가 누슈를 생각하며 그랬듯이 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주변의 모든 것들에 너의 이름을 써.
*
우리는 헤어지지 않아.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아. 50년 동안 너는 나를 매혹적인 모험으로 데려갔어. 가장 광적인 이미지들이 서로 뒤섞이고, 현실은 거의 자리하지 않는 꿈속으로. 오늘, 나는 꿈에서 깨어났어. 생의 한 장이 끝났음을 너의 죽음이 알려준 거야.  




4. 십일월의 노래

- 잘 지내, 윤하: 아이를 안아줄 어른이 되었다는 게 자랑스러워 

 https://www.youtube.com/watch?v=X88F1CVGd8w

잘 지내 Live Clip

11월 16일에 발매된 윤하의 정규 6집 'END THEORY'에 수록된 곡이다. 

이번 정규 6집은 정말 모든 곡들이 너무 좋아서 십일월의 노래를 고르는데도 꽤 애를 먹었다. 그래도 <잘 지내> 이 곡의 가사가 가장 마음에 와닿아서 고르게 됐다. 한창 아무것도 모르겠고 불안하던 나의 열아홉에 윤하의 '답을 찾지 못한 날' 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 감히 안정된 궤도에 올랐다는 생각이 드는 스물둘의 나에게 이 노래가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mnohMZZJcc

답을 찾지 못한 날 MV

여전히 그래서 답을 찾았냐고 물어본 다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안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아직 어리지만.


마음에 마음을 가누려 애를쓰던
아이를 안아줄 어른이 되었다는 게
자랑스러워
가끔은 좀 막막해도 견디고
내일을 위해 잠이 들 줄 알아
이제 울지 않거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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