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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Jan 28. 2024

노라의 명절

이제는 짐을 벗고

부럽습니다.

여전히 연애하듯 사랑스럽게 사시는 비법이 뭡니까.

세상 부러움을 등에 안고

습기 빠진 손등 한번 슥 만지고

노라는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한다.

제수 비용을 어림잡아 본다.

장 볼 제수거리들을 척척 머리에 새겨 놓고

이른 새벽 서서 찬밥에 따신 물을 붓는다.

아직 노곤히 잠든 식구들 뭘로 배 채울까도 한켠 생각하며.


사연도 많고 음악도 신나는 라디오 속 세상을 따라

튀김이며 전들이 채반에 가지런히 자리 잡는다.

너는 전도 이렇게 이쁘게 굽네.

칭찬에 수줍은 노라는 굳어가는 다리며 허리 살짝 비틀며

수북한 나물더미를 훑는다.

퀭한 생선들의 처진 지느러미를 매만진다.

소파서 잠든 신랑과 서재서 꼼짝 는 시아버지 저녁거리 고민하며.


이제 이런 허례 안하면 안돼요?

다 큰 딸의 제안,

이제 그만하자, 우리도.

밥솥 채 놓아도 된다던 아버님도

안쓰런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머님도

강요하는 그 누구도 없는 이제

노라는 명절에 할 일이 없어졌다.

이래도 된다고 하는데 되나 싶다.

요즘 누가 제사 지내요, 다 형식이고 구습이에요.

그래, 그럴지도.

그런데 이제 제사도 없고 사람도 없잖아.

노라는 앉을 자리 없을 만큼 둘러 앉아

반찬 주고받으며 하하호호 눈길만큼 밝았던

그 때의 젊은 노라를 돌아본다.


먼저 간 이들 잠깐 돌아와 쉴 자리도 없으면

나는 또 어디로 와서 자식들 보려나.

 속에 살면 영원히 사는거지.

기억해 주면 사는거야.

그래, 너희 편한 게 최고야.


인형의 집에서 나온 노라는

이제 큰길에서 제 방향 찾아본다.

내가 날 떳떳이 부러워할 날들을 쌓아보자.

난 내가 좋다라고 말할 수 있게.

그들을 기쁘게 해주는 위안이 아닌

나를 기쁘게 하는 나로 살기 위해.

닫힌 문을 열고 나선 노라는

용감히 발걸음을 움직인다.

노라는 노라를 찾아간다.

괜찮다고, 애썼다고 서로 다독여 줄 노라를 찾는다.


#명절 #차례 #인형노라 #자유 #속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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