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휴직, 걱정은 돈으로 받습니다
엄마 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이랬다.
그래, 해라.
그렇게까지 원하는데 해야지.
이 김에 나도 집에서 좀 쉬고,
하고 싶었던 것도 하고 그래야겠다.
남편은 내가 얼마나 나가서 내 일을 하고 싶어 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엄마 휴직 선언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임신을 계획했던 순간부터 아마 이런 날이 언젠가는(곧) 올 것이라고 예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반응에 좀 놀랐다. 주양육자와 주부의 역할을 맡는 것이 ‘집에서 쉬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는 것에 놀랐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해보지 않았으니까 충분히 그렇게 오해할 수 있다.
“콜! 우리 계약 성사된 거지? 굿!!” 쾌재를 부르며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우리 남편, 하고 싶은 거 다 해! 아이 보고 집안일하고 난 뒤에 시간이 남으면 다 해!! 꼭!!’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자꾸 움찔거렸다. 하지만 예의가 있기에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럼 돈을 누가 벌고?
너 일 있어? 아이는?
사위 혼자 볼 수 있겠어?
아마 이 세상에서 나 다음으로 내 걱정을 제일 많이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일 것이다. 역시 속사포 같은 걱정을 쏟아내셨지만 나의 차분한 반박을 들으신 후에는 그 걱정들을 이내 덮으셨다.
“그래, 사위가 몸은 불편하지만 안 될 건 없지. 이제 아이도 많이 컸으니까 괜찮겠다.”
남편은 어릴 적 교통사고로 인해 팔 하나, 다리 하나를 절단한 지체장애인으로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생활하는데 어쩔 수 없이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품 안의 아이가 부서지랴 떨어지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3살이 된 아이는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다. 나의 두 손이 반드시 필요했던 신생아 시기가 무사히 지났으니, 이제는 남편의 한 손으로도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다. 당연히 힘들긴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걱정할 일이 전혀 없다!
잘해 봐. 응원할게.
너 정말 일하고 싶어 했잖아.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의 엄마 휴직 선언에 이렇게 감사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간혹 이런 사람들도 있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 열심히 산다.
너 그럴 수 있는 게
행운인 건 알지?
다들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에 이런 말을 건넸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곱씹어볼수록 이건 나를 위한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런 말들의 속뜻은 ‘너 참 유난이다’였다.
'남들이 그렇게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고 아내가 집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다들 그러고 사는데 너 혼자 왜 이렇게 유난이니, 그냥 남들처럼 살아, 괜한 분란 일으키지 말고.'
가부장 세대의 마지막 딸로서, 수많은 ‘아들’들과 동일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결혼/임신/출산을 기점으로 나의 지난날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공부해라, 대학가라, 취업해라 잔소리하던 사람들이 모두 동시에 “그래도 애는 엄마가 봐야지”라며 날 비난했다. 심지어 “엄마가 애 보는 건 당연한 거고, 나가서 돈도 벌어와야지. 남녀평등시대라며? 너 페미니스트라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남녀평등 시대인데 여자가 돈도 벌고 애도 보고 집안일까지 해야 해? 그게 정말 평등이야?!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라고 고개를 조아리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유난’을 떠는 이유는 단순히 오빠의 라면을 끓여주기 싫어서가 아니다. 원한다면 라면에 짜파게티까지 끓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도 오빠가 나에게 라면을 끓여줄까? 그럴 리 없다.
내가 믿는 페미니즘의 유일한 원칙 <여성과 남성의 권리는 동일하다>를 실천하기 위해 나는 엄마 휴직을 선언했다. 이런 유난이라면 얼마든지 떨어도 된다는 마음속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앞으로 누군가가 엄마 휴직을 검색해본다면, 내 글이 나오겠지?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통해 함께 성장한다.
아, 깜빡할 뻔했다. 엄마 휴직이 “행운”이란 말에 대한 반박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남편이 직업적 부담 없이 휴직을 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 맞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가정해본다면? 부인이 휴직(혹은 전업주부)하고 남편이 일을 하는 상황에서도 당사자에게 “너 행운이다!”라고 말하는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네가 고생이 많다.”라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려준다. 그런데 왜 부인인 내가 일을 한다고 하니 나에게 행운이다 라고 말하는 걸까. 원래부터, 당연히 그래야 하는 ‘엄마’의 역할인 ‘주양육자와 주부’를 남편이 맡아주는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남편의 너그러움에 감사하며? 남편의 일은 부양이고 나의 일은 취미 혹은 자아실현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사회. 내가 드릅고 치사해서 꼬박꼬박 돈 다 벌어오겠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