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주리 Apr 06. 2021

3인 가족 평균 생활비는 얼마냐면요

나는 그만큼을 벌 수 있을까


'얼마를 벌어야 3인 가족이 먹고살 수 있을까?’


작년, 아이가 태어나고 외벌이(전업주부를 직업으로 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부득이하게 사용한다)가 되면서 가정 경제가 급격하게 휘청였다. 둘이 벌어 둘이 쓸 때는 한 사람의 수입을 생활비로 쓰고, 남은 한 사람의 수입을 그대로 저축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가정의 경제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둘 다 수입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대한민국 평균으로 살기에 딱 적당한 정도였기에 큰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바깥일을 그만두면서 저축 가능한 여윳돈이란 개념이 가계부에서 완전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재무설계를 받게 됐는데 오랜 시간 우리의 이야기와 솔직한 숫자들을 정리하신 설계사님이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원래는 제가 상담 말미에 저희 회사와 연계된 상품을 소개해드려야 수익이 나는 건데.. 두 분께는 차마 그럴 수가 없네요. 여기서 더 저축할 여유가 없어요. 지금도 수입 대비 충분히 적절한 소비를 하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생활하시면서, 주리님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기분이 묘했다. ‘낭비하지 않고 잘 살았네요’ 칭찬을 받은 건가 아니면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길래..?’ 채찍을 받은 건가. 남편과 나, 설계사님까지 모두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상담을 마무리했다.



@unsplash


2021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3인 가족(아이 포함)의 평균 생활비는 어느 정도일까? 법에서 정한 최저생계비는 있지만 평균 생활비의 정확한 수치는 찾을 수 없었다. 맘 카페에 “3인 가족 생활비 어느 정도 쓰세요?”라는 질문이 꽤나 많이 올라와있는 걸로 봐서는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하다. 가정마다 수입이 천차만별이고, 지출 내역도 다르기에 평균 생활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내가 공개해본다! 평범한 3인 가족의 생활비! 두둥!


*서울에서 생활하는 어른 2명+아이 1명(3살)의 3인 가족

*순수 생활비(고정+변동 모두 포함)의 월평균으로 계산

*40만 원이 넘어가는 특별 지출은 제외(가전 구입, 여름휴가 등)

*대출금을 제외한 순수 생활비


주거비, 식비, 교통비, 통신비, 여가, 교제비, 생활비, 육아비용, 교육비, 용돈, 공공보험료, 민영보험료, 저축, 할부금을 모두 포함하니 월 280만 원의 평균값이 나왔다. 낱글자만 읽어도 돈 들어갈 곳이 천지인데 여기에 저축이 껴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그 말인즉슨 저축액은 거의 없음이나 다름없다는..(잠깐만요. 눈물 좀 닦고 올게요)

엄마.. 같이 울어요 @unsplash


설계사님의 말씀이 정말 맞았다. 교사인 남편의 월급과 적은 부수입(아동 수당, 간간히 들어오는 나의 부업 수익 등)으로 이 정도를 유지하고 산다는 것은 이미 적절한 소비를 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탈탈 털어봐도 나 자신을 위한 사치품을 구입한 영수증은 찾기 힘들었다. 기껏해야 4,100원짜리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랄까? 아니면 운동을 시작하며 구입한 29,000원짜리 프로스펙스 운동화?


월 280만 원으로 3인 가족이 생활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한다. ‘이번 달만 특별히 이 정도도 괜찮지 뭐~’라고 생각하다가는 점점 카드값에 치여 마이너스의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 가정의 선택과 집중은 다음과 같다.


1. 주 1회 배달 및 외식

- 평일에 1회 배달, 주말에 1회 외식. 평균 2~3만 원대로 선택.


2. 주 2~3회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일하기

- 월 4만 원 이내로 제한. 동네 카페 이용.


3. 운동은 월 15만 원까지 지출 가능

- 대신 개인 용돈 없음(ㅋㅋㅋ)


‘뭐야, 꽤 많이 쓰는데? 이렇게 쓰는데 월 280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래의 항목까지 지킨다는 전제 하에 보면 결코 불가능하진 않다.


4. 생필품 외 사치품(의류, 신발, 가전제품 등) 쇼핑 제한

- 아예 구입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저엉말, 저어어어엉말 필요하고 꼭 꼬오오오옥 사고 싶은 마음이 뇌 속에서 한 달 이상 떠나지 않을 때만 돈을 쓴다.


5. 육아 용품 쇼핑 제한

- 옷은 물려받아 입고, 장난감은 당근 마켓과 무료 대여소를 주로 이용한다.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낱권으로 구입하거나 전집 대여를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항목들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생필품 외에 다른 것을 구입해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남편과 나는 ‘사치(라고 쓰기도 민망한 것들)’에 대한 욕구를 닫고 살았다.


이것이 지금 꼭 필요한 것인가?
없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을 구입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자문자답을 통해, 때로는 서로의 날카로운 눈빛을 통해 욕구를 닫고 살았다. 그랬더니 월 280만 원이 가능했다.


사실 우리 가정보다 적게 쓰는 3인 가족을 찾는 일은 굉장히 쉽다. 외식과 배달을 전혀 하지 않는 가정도 있고, 심지어 생필품도 사지 않는 가정도 봤다(근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의 존엄과 인간다움을 지키자는데 동의했기에 월 280만 원 소비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2,500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한 시간 반 동안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은가?


자, 이 긴 글을 통해 우리 가정이 월 280만 원을 쓴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내가 280만 원을 벌 차례다. 사실 프리랜서 연극 강사ㆍ기획자로 일하면서 월 280을 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오전에는 인형극을 하고, 오후에는 연극 수업을 하고, 저녁에는 공연 연습을 하고, 주말에 공연을 다닌다면 월 300 이상도 거뜬히 벌 수 있다. 출산 전까지 그렇게 살았으니 엄마 휴직을 하고 난 뒤에도 그렇게 벌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육아 휴직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그리고 일 년이 넘도록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쩌지? 이미 육아 휴직 신청은 완료됐는데 내 수업과 공연은 죄다 취소됐다. 큰일이네, 우리 뭐 먹고살아?


눈에서 돈 나왔으면 좋겠다 @unsplash


결국 계획했던 남편의 1년 육아 휴직을 6개월로 조정했다. 육아 휴직 급여를 월평균 60~7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는데, 내 수입이 반의 반 토막이 났으니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월 280만 원의 생활비를 충당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했다. 일 년간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엄마 자리에서 휴직하겠다는 선언을 당차게 했는데 현실은 반토막 난 일 년이었다. 실망감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래도 세 식구가 손가락 빨고 살 수는 없기에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의 육아 휴직 급여 평균 70만 원에 나의 수입 평균 210만 원을 더 해 월 280만 원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엄마 휴직의 첫 번째 목표다. 나의 꿈? 개인적인 목표? 읽고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소망? 모든 것은 우리 세 식구가 삼시세끼 따뜻한 밥을 먹고살 수 있게 된 다음의 일이다. 정신 차리자! 나란 사람아!




이전 09화 집안일+양육 list, 겨우 이것밖에 없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