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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주리 Apr 11. 2021

전업주부가 외로운 이유

남편은 육아 휴직3일 만에 외롭다고 말했다


엄마 휴직이자 남편의 육아 휴직이 시작되고 3일째의 밤. 출근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다는 즐거움과 내 시간을 온전히 나의 계획대로 쓸 수 있다는 만족감에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는 밤이었다. 종일 사무실 책상에 앉아 수업 준비, 회의, 글쓰기를 했지만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1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내 앞에 앉아있는 남편의 표정은 나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항승아. 무슨 일 있어?"


주리야.
나 우울증 걸릴 것 같아. 외로워..



배우자의 입에서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나오면 일단 걱정하는 마음부터 들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내 입꼬리는 밑으로 내려 올 생각이 없었다. 주양육자와 주부의 역할에 전념했던 3년.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나 우울해. 집에만 있으려니 막 답답해. 나 너무 일하고 싶어. 나 진짜 출근하고 싶어” 노래를 불러왔다. 그때마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니?
지금 나갔다 올래? 내가 아이 보고 있을게.
아니면 주말에 혼자 외출하고 올래?
그러면 되겠어?”



아니,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전업주부’ 역할을 수행하며 느끼는 우울의 근본적인 원인은 단순히 하루 이틀 외출하고 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남편이 퇴근하고 육아와 집안일을 더 많이 돕는다고 해서 좋아질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전업주부, 우울의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봤다.




우울하다고!!! @unsplash


1. 외로워서

아이를 낳고 육아하면서 점점 주변의 사람들을 잃었다. 특히 오랫동안 만나 온 친구들 중 아무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이 없다 보니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힘들어졌다. 나도 힙하고 핫한 카페에 친구들과 함께 가서 수다를 떨고 싶은데, 그런 곳들은 대부분 노 키즈존이다. 즉 나는 아이와 함께 그곳에 갈 수 없다. 주말에 남편이 아이를 보고 외출한다고 해도,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의 흐름에 끼어드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자연스럽게 그들도 나를 찾지 않고, 나도 그들을 찾을 수 없게 됐다. 동네 아기 엄마 친구들도 많이 만나봤지만 속마음까지 터놓고 관계를 이어가는 건 내가 셋째를 낳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루종일 아이와 둘만 있다보니 입에서 단내가 난다.


2.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육아와 집안일 때문에

바깥일을 하고 나면 돈을 벌거나, 결과물이 남아서 일한 ‘티가 난다’. 하지만 육아와 집안일은 매 분 매 초를 맨발로 뛰어다녀도 일한 티가 거의 나지 않는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등원하고 난 뒤 정말 열심히 집을 다 치웠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하원하고 나면 오히려 아침보다 더 더러워진다. 남편은 그렇게 더러워진 상태의 집만 보기 때문에 내가 집에서 매일 얼마나 열심히 집안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억울하다. 우울해진다.


3.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바깥일을 하면 결과물의 질과는 크게 관계없이 경력이라도 쌓이는데, 전업주부의 일은 아무런 경력도 되지 않는다. 이력서에 <지난 3년간 출산과 육아를 함>이라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몇몇 책과 유튜브에는 ‘엄마의 시간이 바로 경력이다’라는 말도 나와있지만 샅샅이 읽고 분석해보면 그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엄마들에게 유튜브를 시작하라고 말하는 소위 ‘전문가’들이 제일 나쁜 사람들이다. 모두가 당신처럼 가진 것을 잘 포장해서 표현해낼 수 있는 건 아니거든?!(항승 주리 유튜브 운영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볼멘소리를 좀 해보았다)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이름표이자 꼬리표를 붙인 채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한정적이다.





이런 우울을 전업주부가 된 지 3일 만에 남편이 느꼈다는데 정말 놀랐다. 지난 3년간 토로했던 나의 우울을 너는 딱 3일 만에 온 몸으로 이해하게 됐구나. 역시 백마디 말 보다 한 번의 완전한 역할 바꾸기가 서로를 이해하는데 훨씬 큰 도움이 됐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어떤 말을 한 대도 남편의 대답 “지금 좀 나갔다 올래? 그러면 괜찮겠어?” 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절대 전업주부의 우울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알기에 좀 더 현실적인 답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남편은 말 그대로 좋은 아빠다


“전업주부는 일부러 나가서 뭘 하지 않으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가족 외에는 아무랑도 말 안 하고 살 수밖에 없어. 운동이든 학원이든 뭐든 해야 해. 사람들이랑 눈인사만 해도 외로움이 덜 하다?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안정감이 들거든. … 운동 등록하는 게 어때? 아니면.. 사격하고 싶다고 했지? 보컬 트레이닝도 받아보고 싶어 했잖아. 뭐든 하고 싶은 거 다 해!(단, 월 15만 원 이내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한 달에 15만 원으로 우울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남편은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외로운 고립된 전업주부 생활에서 조금씩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육아 휴직 3일째의 밤이었다. 우울하다는 남편이 조금 안쓰러웠고 많이 통쾌했다. 너무 나쁜 부인인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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