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내 뜻대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만족감
전업주부 시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삶의 주체성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삶의 주체성이 차고 넘쳤기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 맞다. 하지만 육아에 집중하면서 나의 24시간이 오로지 나의 결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돌아가니 숨이 턱 막혀왔다. 신생아 육아만 끝나면,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되면, 어린이집에만 가면 양육자도 좀 편해진다는 선배 부모들의 말을 믿고 또 믿었는데 역시나! 아이가 성장과는 별개로 주양육자의 하루하루는 ‘대기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주부로서 필수적인 집안일을 재빠르게 해놓고 나면 남는 시간은 3시간 남짓. 그 사이 무언가를 해보려는 시도를 하면 할수록 가족 모두가 힘들어졌다. 나는 마음껏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니 결과물이 마땅치 않아서 불만, 남편은 그런 나의 불만을 받아주는 게 힘들어서 또 불만, 아이는 엄마가 자기랑 충분히 즐겁게 못 놀아주니 역시 불만. 나의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아이가 2살이 되고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했을 때, 우연한 기회로 에세이 출간 계약을 하게 됐다. 10년 넘게 운영 중이던 <사랑에 장애가 있나요?> 블로그를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니 낮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겠지?’ 이미 작가가 된 것 마냥 들떠서 너무 빠르게!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업주부 엄마의 글쓰기 여행’은 시작하자마자 파국으로 치달았다.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것과 책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한 가지 주제로 엮어진 수십 장의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뼈속까지 내려가 나를 파내야만 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오전 10시, 등원 전쟁을 마무리하고 책상에 앉아 나의 뼈를 깎아 낼 무기를 들었지만 어느 쪽부터 파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오른쪽 팔인가? 왼쪽 허벅다리인가? 두 번째 갈비뼈인가? 무기를 들고 서성이다 보니 어느새 오후 3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다. 컴퓨터 화면 속에는 여전히 깜빡이는 커서만 남아있다. 이런 날들이 한 달, 두 달 반복되면서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하루 3시간 정도면 충분히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의 깜량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아이와 남편에게도 스 스트레스가 전해졌다.
책 쓰기가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그날도 똑같은 날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책상에 앉아 엉덩이로 글을 쓰고. 하지만 여전히 맘에 드는 글은 나오지 않고. 그러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남편이 작게 웅얼거리며 저 말을 했을 때 나는 폭발했다.
“지금 그게 무슨 뜻이야? 나보고 책 쓰라고 한 사람이 누군데?”
“애, 그런 게 아니라.. 책 쓰는 게 원래 이렇게 힘든 거야? 다들 이렇게 힘들어해?”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책 처음 써 봐.”
“나는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지. 주리 네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걱정돼서 그런 거야.”
“그럼 그냥 걱정을 해. 주리야 힘들지?라고 걱정의 말을 하라고. 책 쓰는 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은 걱정이 아니라 너의 감정을 내뱉은 거잖아. 내가 책 써서 지금 네가 힘들어 죽겠다는 거지? 네가 힘들지 않게 책 쓰기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나한테 할 말이야?”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난 그냥 책 쓰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 보여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그냥 걱정을 하라고.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해?”
남편에게 이렇게 격하게 반응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화가 날수록 더 차분해지는 평소 성격과는 다르게 감정은 더 극으로 차 올랐다. 응원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이런 반응이라니, 그것도 네가 먼저 책 쓰라고 꼬셨으면서!! 남편과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글들을 모조리 버려버리고 싶었다.
파국을 지나 쓰레기통으로 버려질 뻔한 글들의 멱살을 잡고 이고 지고 끌고 가며 겨우 출간을 마쳤다. 약 7개월 동안 나의 모든 평일 낮 시간을 글쓰기에 바친 결과였다. 있지도 않은 둘째를 출산 한 기분이었다. 출간, 출산. 한 글자 차이니 출산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 휴직 후, 수업과 공연이 없는 시간에는 전업주부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썼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공간과 의미다. 집에서 사무실로, 대기하는 시간에서 내가 계획하는 시간으로! 하원 시간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뼈를 깎아내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오늘, 내일, 일주일, 한 달, 육 개월의 계획을 모두 잡아놓고 그에 맞춰 여유롭고 주체적으로 글을 쓴다. 남는 시간, 대기하는 시간에 하고 싶은 것을 쫓겨가며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간을 결정하여 계획적으로 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차이가 있었다. 똑같은 3시간이라도 결과물이 완전히 달랐다. 바닥에 뒹구는 빨랫감을 애써 무시하며 집중하지 않아도 되니 글쓰기 몰입까지 들어가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었다. 언제 아이가 어린이집에 못 가는 날이 올지 모르니 불안한 마음에 글을 토해내듯 썼던 시간도 더 이상 없다. 일주일을 시간 단위로 나눠 원하는 대로 조율하며 천천히 글을 쓴다. 이동하는 시간에는 머릿속으로 글감을 정리하고 앉아 있는 시간에는 그 생각들을 조립하여 글로 풀어낸다. 키야, 이것이 바로 내가 꿈꿔왔던 글쓰기 환경이다!
주리야. 요즘 너 짜증이 줄었어.
엄마 휴직 후,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면 짜증 날 일이 딱히 없다. 일은 열심히 준비한만큼 성과가 나고(물론 그 열심히라는게 무지하게 힘들긴 하지만), 취미인 글쓰기는 마음껏 할 수 있어서 능률이 오르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니 짜증 날 일이 없다. 주체성. 이렇게 중요한 문제였구나!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주양육자가 되면서 짜증과 화가 늘었다. 웃프다)
전업주부로 돌아가도 이런 삶의 주체성을 가지고 글을 쓰며 꿈을 꿀 수 있을까? 오소희 작가님은 <엄마의 20년>에서 “엄마들이여, 매일 오전 눈썹을 그리고 집을 나서라. 그리고 뭐든 해라. 커피를 마시든 등산을 하든. 일단 집을 나가라”라고 말했다. 뼈속까지 책임감으로 뭉쳐진 나도, 쌓여있는 집안일과 육아 잔업들을 뒤로하고 집을 나설 수 있을까? 엄마 휴직이 끝나도 나의 몰입을 위한 오전 시간을 지켜낼 수 있을까? 마음속에 질문을 품고 일단 이 휴직 기간을 충분히 즐겨야겠다. 일해서 돈 벌고, 글 써서 마음 챙기고. 그 두 가지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