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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주리 Apr 11. 2021

경력단절맘! 3년 만의 복귀 첫 날,펑크를 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만 백 번


정말 죄송한데 저 좀 늦을 것 같아요. 먼저 교실에 들어가 있으실래요?”


인형극 배우 8년 차.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대사를 줄줄 읊을 만큼 익숙한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순회하며 공연을 하는 형태라서 매일 다른 학교로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 조금 복잡하지만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출근 시간은 차가 막혀, 항상 내비게이션이 말해주는 시간의 2배를 찍고 나오면 늘 30분 먼저 도착했기에 이 날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벗뜨. 오산이었다. 경기도 오산도 아닌데 엄청난 나의 오산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출근 시간에 운전을 해 본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 이 엄청난 사태의 원인이었다. 임신-출산-육아를 했던 3년 동안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인 오전 7시~9시는 나에게 그저 여느 시간과 똑같은 육아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집에서 겨우 5.5km 떨어진 가까운 학교였음에도 1시간 45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서울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다. 결국 3년 만의 화려한 복귀 첫날은 심장이 타들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차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시작됐다. 저 다리 하나만 넘으면 되는데, 여기만 지나가면 되는데 어쩜 차가 움직일 생각은 안 한다. 차를 버리고 뛰어가는 게 더 빠르겠다고 생각됐지만 그러면 내 뒤의 차들은 모두 저 자리에서 쫌 짝하지 못할 테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애꿎은 머리카락만 쥐어뜯었다.. 


300m를 한 시간이 넘게 걸려 겨우 통과하고 나서야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미친 듯이 달려 학교 운동장에 주차를 하고 다시 미친 듯이 달려 간신히 교실에 도착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동료들과 학교 선생님께 사과를 하자마자 다음 교시의 공연이 시작됐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관객들을 맞이하고 활짝 웃으며 인형을 잡았다.




연극 강사라는 일에 3년 만에 복귀한 첫날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며칠 동안 계속해서 대본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지난날의 감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1, 2, 3, 4교시에 예정된 공연 중 첫 시간인 1교시 공연을 내가 늦어서 펑크를 냈다. 내가 원래부터 일에 잘 늦는 사람이었다면 충격이라도 덜 했을 텐데(?), 나는 14년간 강사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수업이나 공연에 늦은 적이 없었다. 항상 오버스러울 만큼 일찍 서둘렀고,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에서 나 혼자 기다리는 게 매일의 아침 일과였다. 그런데 복귀 첫날에 늦었다. 공연이 펑크 났다. 바로 나 때문에. 나란 놈이 늦어서!!!!


@unsplash


하지만 인형극이 시작되자 대체 내가 언제 늦었냐는 듯 능청맞게 대사를 내뱉고 관객들의 반응을 유도해내는 나를 보며 스스로가 조금 무섭고 웃겼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지난 3년 동안 마음 한 구석에 늘 자리 잡고 있던 이 의문. 이 질문. 



출산을 하면 뇌도 같이 출산한다던데.. 일 하다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면 어쩌지? 요즘 단어도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대사를 다 까먹으면 어쩌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대부분 그만뒀는데.. 새로운 동료들과 하나도 모르는 사이인데, 잘 맞출 수 있을까? 다들 20 대일 텐데 나만 혼자 흰머리에 주름살이 가득한 아줌마라서 웃겨 보이면 어쩌지..



역시 고민은 고민일 뿐,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아이를 안고 고민한다고 내 흰머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기억을 전담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고.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행동하고 결과를 분석하여 다시 행동하는 것뿐! 사실 엄마 휴직을 준비하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많이 조심스러웠다. 공연이나 수업 의뢰가 오면 조건이 다 맞는대도 두려운 마음에 일을 거절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괴물은 점점 나를 갉아먹었고, 이렇게 가다가는 복귀는커녕 그냥 계속 집에서 불평불만이나 하며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을 것 같았다. 

@unsplash



그래, 나 잘할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지금까지 널 먹여 살린 일인데!! 뭐가 그렇게 두려워? 일단 시작해! 하면서 잘 안 되는 부분은 바꿔가면 되는 거잖아! 얼른 그 일을 하겠다고 수락해!!



지난 십여 년 동안 나란 사람을 지탱해 온 꽤나 큰 축, 연극 강사라는 직업은 놀랍게도 내 세포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모두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온 몸 여기저기에 살아있었다. 그동안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표현이 마치 족쇄처럼 내 손과 발을 묶어두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 나는 오랫동안 일을 쉬었으니까 다시 해도 잘 못 할 거야…’ 육아로 인해 바깥일을 쉴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을 꼭 이런 삭막하고 몰인정한 단어의 조합으로 표현해야 하는 걸까? 이 세상의 육아하는 전업주부 엄마들을 한 순간에 ‘집에서 애 보며 노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표현. ‘주양육자’와 ‘주부’의 시간은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이 표현. 물론 지난 시간 동안 했던 본인의 일과 관련된 경력이 잠시 단절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여성들이 ‘너~어무 그렇게 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육아 중에도 연극하는 엄마


출생률이 계속 떨어진다며 호들갑을 떨고, 대한민국 출산 지도(일명 가임기 여성지도)라는 해괴망측한 작품(?)을 만들어 낼 시간에 이런 표현부터 바꿨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원해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아니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잠시 예전의 바깥일을 중단한 것뿐이다. ‘경력 단절 여성’보다 차라리 ‘집중 양육자’는 어떨까? 어감상 더 부드럽고 그 기간의 뜻과도 더 맞다고 본다. 게다가 스스로 부르기에도 떳떳하다. 

“안녕하세요. 집중 양육자 권주리입니다.”


복귀 첫날, 타이어 펑크가 아니라 공연 펑크를 내버렸지만 그래도 이런 경험을 통해 귀한 것을 배웠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것(심지어 나도 약속 시간에 늦을 수 있다는 것), 실수를 했으면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것. 설사 해결 방법이 없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학교 선생님의 이해 덕분에 공연 스케줄을 다시 조율하고, 극단 대표님께 전화해서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팀 동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사죄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된 나의 복귀 첫날. 휴우, 차에 토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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