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혓바닥

by 보헤미안 소금

겨울 비가 내리는 한적한 오후. 후쿠타는 도쿄로 귀환한 지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후쿠타는 그녀 앞에 서 있었지만, 그녀는 후쿠타가 대만에 있는 징통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 듯한 무관심한 표정을 보였다.


징통은 대만 핑시선의 종착역이다. 시간과 공기가 멈추고, 그곳은 사람들의 손길이 떠난지 오래되었다.

눅눅한 시멘트 벽에 붙은 청색 이끼 사이로 풀벌레들이 몇백 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왔을 것 같은 곳이다.

가난한 한 시대의 청사진인 징통에서 후쿠타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잠시 보류한 채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했다.

후쿠타는 그렇게 풀벌레처럼 조용히 지내온 삶을 마나미가 흥미롭게 생각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 후쿠타는 디자이너 하라켄야를 존경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리고 후쿠타가 꿈꾸던 하라켄야와의 협업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당시 후쿠타는 도쿄 칸조우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타이베이에 있는 힐튼 호텔 레스토랑에 납품할 식기들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후쿠타는 그 나라의 정서를 담아 일본의 실용적인 실루엣을 그리고 싶어했다. 서양에서는 이것들이 뭐가 다른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정서와 실루엣은 대만이나 일본이나 똑같지 않느냐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잠재된 신념이 간혹 흐릿해지곤 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어떠한 비밀과 미묘한 차이들이 숨겨져 있다. 후쿠타는 그것을 믿었다.


한편, 후쿠타가 디자인한 접시는 레스토랑 손님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들은 후쿠타의 작품과 접시에 어울리는 특별한 메뉴마저 새롭게 추가해 주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후쿠타에게 디자인을 의뢰한 힐튼 호텔에 하라켄야가 한 달 동안 머무르게 되었고, 그는 후쿠타가 만든 간장을 담는 작은 종지를 보고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 작은 종지는 후쿠타가 머릿속에서 고안한 특별한 종류의 것이었다. 이 작은 종지에는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 간장이나 식초에 찍어 먹을 때, 그 테이블에 흘리지 않도록 한 번 거를 수 있는 특별한 디자인이 담겨 있었다.


후쿠타는 이 작은 종지를 통해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독특한 감각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 종지는 단순한 식기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후쿠타의 마음과 손길이 담겨져 있었다. 모든 디테일에는 인간의 손길과 감성이 고스란히 살아숨쉬었다.


그리고 그 작은 종지를 완성할 때마다 후쿠타는 기술자들에게 끝을 얇게 하도록 조용히 명령했다.

얇은 끝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후쿠타는 세심함과 고집스러움을 가지고 기술자들을 교묘하게 협박했다.


"고양이 혓바닥이 맘에 들지 않아요. 좀 더 얇게 마무리해 주세요."


후쿠타의 말에 담긴 강한 의지와 자부심은 기술자들을 매료시키며, 그들은 후쿠타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 작은 종지는 후쿠타와 하라켄야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얼마후 후쿠타에게 연락이 왔다.


"하라켄야씨가 후쿠타씨를 뵙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하라켄야씨라면 무인양품을 디렉팅하는 디자이너를 말씀하시는건가요?"


후쿠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가 왜 자신을 만나려 하는지 궁금했다.

혹시나 자신도 모르게 하라켄야의 디자인을 표절 했다면, 그래서 법적대응을 경고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담당비서의 내용은 간략하고 놀라웠다. 무인양품에서 팝업 형식으로 징통에 정서를 담은 식기들을 일정기간동안 매장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하라켄야의 아이디어는 후쿠타의 아이디어와 흡사했다. 고전적인 멋을 더한 실용성. 그러면서도 실용성은 노출되지 않는 간결한 형태 원했던 것이다. 후쿠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이 디자인한 식기들이 징통의 무인양품 매장에서 판매된다는것이 꿈만 같았다.


후쿠타는 며칠후 담당 영업사원과 계약서에 싸인했다. 처음 후쿠타는 하라켄야를 직접 만나는줄 알고 기대했지만 하라켄야는 프로젝트가 완료일정이 다가오는 동안에도 볼 수 없었다. 후쿠타는 실망했다. 자신의 역량을 알아보는것은 미적 감각이 아닌 비즈니스의 일부분일 뿐이고, 하라켄야의 디레팅 안에서 단지 자신은 하나의 부품 조각일 뿐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실망 하고 있을때 쯤 마감일 3일을 남기고 그가 나타났다.

단번에 후쿠타를 알아본 하라켄야의 첫마디가 인상적이었다.


"고양이 혓바닥이 전국 매장에서 판매가 소진 되는날 저에 별장으로 초대 하겠습니다."


하라켄야는 그렇게 말하고는 후쿠타를 등지고 기술자들과 리터칭 작업에 합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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