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후쿠타가 설계한 고양이 혓바닥 식기였다. 4천 개 물량이 일주일 만에 모두 판매되었고, 뒤늦게 소문을 듣고 찾아온 고객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해 출시를 기다렸다.
맨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여정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 어떠한 순간이 최고점에 달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낀다.
타인에 인정이든 스스로의 인정이든 모든걸 통틀어서 느낄수 있다. 후쿠타의 여정에 최고점의 순간은 아마도 지금일 것이다. 그순간은 생명체처럼 다음 작품에 새로운 공기와 온기를 불어 넣는다. 이제 그 최고점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여정이 다시 시작된다.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던 마나미는 불현듯 그의 침묵을 깼다.
“무슨 생각해요?”
마나미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후쿠타는 대답 대신 창밖으로 담배 연기를 던져 버리듯 내뿜는다. 그연기는 체인지업보다 더 느린 이펙티브 투구로 큰아치를 그리며 창문밖 아래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숙녀 앞에서 매번 담배를 태우는 그에게 최소한의 매너란 그런것이었다. 마나미는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갔다.
"사신 같은 건 없어요. 하지만 그런류의 뭔가가 있다면, 그건 그저 동행하는 것일 뿐이에요"
“그렇다면, 외계인이라도 만난 걸까? 그게 더 현실적인데.”
“아니, 그 존재는 우리 중 누구도 될 수 있어요. 어쩌면, 잠든 사람의 곁을 지켜주는 걸지도 몰라...”
이런 심오한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마나미는 변화된 자신을 설명했다. 한 때는 치명적일 정도로 날카로웠던 그녀가, 큰 사고를 겪은 후에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세상의 사람과 사물을 총명하고 너그럽게 바라보는 새로운 마나미가 등장한 것이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해요. 인생에서 제일 그리웠던 사람이 선택되는 거야. 그리운 무언가가 될 수도 있고.”
“그렇다면 혹시 마나미가 그리웠던 사람이 나일 수도...”
"당연히 아니죠"
내심 기대했던 그가 눈썹을 긁적거리며 새담배가치를 입에 물었다가 방금 전에 피웠던걸 깨달았는지 다시 담배값안으로 집어 넣는다.
"후쿠타.. 그런 아쉬운 표정을 짓기에는 .. 우린 아무일도 없었고 그렇다할 교류 같은것도 없었어요."
"그렇다할 교류라는건 .."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아니면 언젠가 있을 만남을 위해 가슴속 모퉁이에 서로 방하나쯤은 비워두는 그런것 "
"마나미 사실 난 너를 위해 모퉁이에 방두개를 .. "
"시덥지 않은 농담 하지마세요."
"시누츠미요 오카시타.."
"방금 '죽을 죄를 졌습니다' 라고 말한건가요?"
후쿠타가 부끄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마나미는 꺄르르 웃는다. 두 사람의 대화는 농담과 기묘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후쿠타는 12월의 창밖으로 내리는 겨울비를 바라보았다.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겨울비가 내리는 것은 그에게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마나미의 기묘한 사신 이야기에는 이질감을 느꼈다.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에 조금의 반성을 느끼며, 그는 대화를 새롭게 이어가기로 했다.
후쿠타가 대화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네가 본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 앞서가는 할머니였고, 넌 따라가려 했지만 따라갈 수 없었어. 아마 네가 뛰는 데는 약간 잼병이었을 수도 있겠지."
후쿠타는 농담을 섞어 말하며 상황을 더 가볍게 만들었다.
"그리고 넌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목격했지?"
마나미는 응답했다.
"맞아요. 할머니 옆에서 어떤 것이 떠다니면서 동행했어. 처음엔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자세히 보니 파란 양철 필통이었어요. 연필소리로 출렁이는 양철필통."
"잠시만.."
후쿠타가 마나미의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 파란양철 필통이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끄집어내네. 아사쿠사 중학교를 다닐 때, 테츠진(철인28호) 캐릭터가 프린트된 그 파란양철 필통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 그건 나를 귀찮게 쫓아다니던 후배 여자아이가 준 첫 선물이었지. 그 필통은 잃어버린 후로도 쉽게 잊혀지지 않았어. 마치 아이돌 가수가 팬에게 받은 첫 선물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야. 물론 나는 아이돌은 아니지만."
마나미는 미소를 지으며 후쿠타를 바라봤다. 그녀는 말없이 그가 무엇을 깨닫길 기다리는 듯했다.
후쿠타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런 것도 그리운 무언가.. 그러니깐 그리웠던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하려는 거지? 그렇지? 마나미가 말하고 싶은 게 이런 거야?"
마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쿠타는 갸우뚱 하면서 마나미에게 되묻는다.
"그럼 내가 죽게되면.. 내가 그리워 했던 사람이 동행하거나, 아니면 양철필통 따위가 나랑 동행 한다는거야?"
"그건 모르겠지만 어디 까지나 저에 추측이에요. 그 세계를 다녀온 나의 경험에 의하면 말이죠."
후쿠타는 양철필통 따위가 자신에게 길안내를 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자존심이 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난 할머니와 동행하는 그 파란양철 필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다가갈 수 없었으니 물어보지 못한 거죠. 그저 아련한 뒷모습만 봤어요. 그게 뭘까? 죽은 아들의 파란양철 필통이었을까? 아니면 손자에게 미처 사주지 못한 미련이 그세계에 딸려온 건 아닐까 생각했죠."
창밖의 겨울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거리에서는 유독 파란색 우산이 많이 보였다. 후쿠타는 고민했다.
"그렇다면 마나미와 같이 동행한건 누구인지 이제 말할수 있겠군"
"그걸 알기 전에 나와 같이 갈때가 있어요"
이미 마나미는 짙은 네이비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고쳐 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