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에게 편지가 온 것은 3년이 지난 후였다. 그리 아름답지 않았던 끝맺음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서로의 이해관계 안에서도 원망의 불씨는 남았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화가 나기도 했다. 도대체 멀리 있는 이곳까지 어떻게 알고 편지를 보냈을까.
그리고 그는 얼마나 또 유쾌한 척하며 힘든 모습을 감췄을까. 아마도 편지의 첫머리글부터 자신은 괜찮다라는 뉘앙스를 풍길 것이 분명했다. 그 지긋지긋했던 ‘자신은 괜찮다’는 걸 왜 3년이 지난 후에 다시 말하려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누구 편지니? 요즘에도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나 보구나.”
그녀는 신기한 듯 우편함에서 자신이 가져온 편지의 앞뒤를 보며 발신인을 궁금해하는 듯했다.
“그냥 불운의 편지 같다는 생각이 드네. 별로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열어서 읽어 보지 그러렴. 멀리서 온 편지 같은데. 혹시 전에 만났던 그 친구니?”
마나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심한 듯 편지봉투를 연다. 지하 깊숙이 버리고 왔던 유하의 온기와 다정함이 편지봉투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온다. 식탁에 앉아 버터가 녹아든 바삭 구운 식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스락바스락 입안에서 씹히는 소리가 마음 저편에 흩뿌려진 멍든 낙엽을 밟는 소리로 되돌아온다. 편지봉투는 식탁 아래 휴지통에 툭하니 던져 버렸다.
첫 줄을 읽는 순간 ’정말 미친…’ 이라며 거친 단어가 자신도 모르게 나왔다.
편지의 첫 줄에는 ’다녀오셨어요, 엄마?’라고 씌어져 있었다.
엉뚱하고 한심한 구석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익히 알아왔지만, 이런 유치한 첫 인사라니. 10년간 만났던 여자친구에게 말도 안 되는 도입부의 편지를 보낸 유하가 한심했다. 그리고 편지를 전부 내려 읽고 테이블에 고개를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주르륵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징통에서 보냄.
엄마, 돌아오셨어요?
오늘 하루도 이불 밑에 몸을 파묻고, 조용히 시간을 보냈어요. 창문 너머 바람은 차갑고, 베란다 근처에는 얼어붙은 공기가 가득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불 속에 있었어요.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요. 이곳에서의 시간이요. 그런 기분이 들어요.
배는 고프고, 엄마를 기다리는 건 언제나처럼 길고 느리게 흘러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계단에서 엄마 발자국 소리가 들리네요. 이 소리는 결코 실수하지 않아요. 제 귀가 움직이고, 가슴 한켠에서 묘한 설렘이 솟아나요. 그리고 문이 열리고, 도시락을 든 엄마가 들어오세요.
그 순간 저는 어딘가로 도망쳐요. 침대 밑, 화장대 뒤, 싱크대 구석까지. 잡아보세요, 엄마. 하지만 결국 엄마 손에 붙잡히고 말죠. 공중에서 제 발이 헛돌고, 엄마 손은 생각보다 차갑네요. 그래도 금세 따뜻한 이불 속으로 데려가 저를 꼭 안아주시는 엄마가 있어요.
엄마는 도시락을 꺼내고 상을 펴세요. 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저는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봐요. 그리고 나무젓가락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면 밥상 앞에 앉아 코를 들며 엄마를 쳐다봐요. 하지만 엄마는 늘 한 톨도 주지 않으세요. 그 이유를 저는 알아요. 엄마가 저를 위해 그러는 거잖아요.
엄마가 밥을 먹는 동안, 저는 엄마 양말 냄새를 맡아요. 그 양말에서는 묘한 냄새가 나요. 새로 온 푸들의 냄새, 그리고 네코상의 냄새도요. 그렇죠, 엄마? 네코상이 여기 있었죠? 양말 끝에 박힌 털은 분명 네코상의 털이에요.
아, 증거가 필요하다면 가져올게요. 침대 밑에서 고양이 인형을 물어왔어요.
“쿠보, 네가 어떻게 알았어? 오늘 네코상이 왔어. 엄마가 깜빡했구나.”
그 말에 저는 뱅글뱅글 돌며 기뻐했어요. 네코상이 왔다니, 오늘 엄마는 네코상과 시간을 보낸 거죠?
“네코상은 털이 참 많았어. 그리고 또 내 팔을 할퀴었지. 고양이들은 늘 그렇다니까. 하는 수 없어. 잠이 들게 하는 수밖에..”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요.
“네코상을 미워하지 말아줘, 쿠보.”
네코상은 엄마를 좋아해요. 그리고 저는 네코상과 놀 때가 즐거워요. 물론, 네코상은 항상 자존심을 지키려 해요. 털을 깎으로 갈 때마다 말해요.
“이번에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돌아올 때는 풀이 죽어 있죠.
“결국 또 졌어… 잠들었더니 내 털이 이 모양이네. 벌거숭이가 되었군..”
"내가 같이 있어줄까?"
"넌 아직 고양이의 자존심을 모르는구나.."
엄마, 저는 그런 네코상이 보고 싶어요. 저 고양이 인형은 눈도 깜빡이지 않잖아요. 진짜 네코상과 놀고 싶어요. 그래서 고양이 인형은 다시 침대 구석으로 밀어둘래요. 네코상이 돌아오는 날까지요.
•
유하의 엉뚱한 행동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달랐다. 이곳으로 오기 전 오랫동안 키운 쿠보를 그에게 맡겼다. 그를 다시 보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쿠보를 키워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평소 쿠보를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고 잠들던 그가 마다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유하는 특히 기형일 정도로 얇은 쿠보의 피부를 좋아했다. 유하는 살짝 튀어나온 쿠보의 뱃살을 쓰다듬거나 아니면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는 걸 좋아했다. 서로 배꼽을 맞추어 눈을 마주치면 쿠보가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되풀이하곤 했다. 아주 가끔 내가 유하의 배 위에 올라가지 못한 경우도 그 정신나간 "인간과 동물의 대화" 라는 멍청한 주술 때문이다. 개의치 않았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동물인지 분간할수 없는 그광경을.. 바보 같은 그 둘을 보는것 또한 흥미로운 경험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새아버지는 강아지를 집에서 키우는것을 반대했다. 그렇다면 영원한 안녕을 바라는 유하에게 쿠보를 맡긴다면 나는 쿠보와 더 영원한 안녕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것은 변명같은 책임회피 일지도 모른다. 마치 의도치 않게 쿠보를 볼 수 없는 것처럼. 감정과 눈물을 소비하지 않고 손쉽게 이별하는 방법. 그런데 3년 뒤 유하는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창가에서 불어오는 풀냄새 붙은 바람을 맡으며 우린 쿠보를 사이에 두고 누워서 수많은 대화를 하곤 했다. 우리의 대화에 참여 하지 못한 쿠보가 이제와 사람처럼 말하는것처럼 들렸다. 그가 쿠보를 변명 삼아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편지엔 쿠보와 나만이 존재했고, 유하는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하의 행동이 창의적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그런 재능을 돈을 버는 데 썼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행동과 그의 행동을 못미덥게 바라봤던 나의 행동은 모든 남녀관계에서 사소롭게 정의 되는 일들이었다.
윌리엄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 나오는 고갱의 말이 떠올랐다. 그 차갑고 비인간성의 이기적인 고갱은 자신을 보살펴준 화가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도 이렇게 변명하였다.
“여자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남자는 용서해도, 자신을 위해 희생한 남자는 용서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한 건 그 문장을 나에게 알려준 사람은 ‘유하’였다.
유하는 그 말의 뜻과 성질을 이해하면서도, 버림받을 것을 알면서도 나를 위해 희생하는 남자를 선택한 것이다. 모든 인생의 정답을 그렇게 숙지하고 있어도 자신이 오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에겐 아마도 용서받지 못하는 희생이 더 나은 삶이라 생각했을지도.
그의 편지는 이야기의 본질만 달라졌을 뿐 어쩌면 아직도 자신은 나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유와 본질을 알 수 없는 그 희생이란 무엇일까 궁금했다.
본인의 행복을 나에게 반으로 나누어 줌으로써 희생인지, 본인의 희생을 알려 줌으로써 내가 받는 사랑의 농도가 깊어진다고 전하고 싶은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주 조금 추리를 해본다면 그와 나의 공통점인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의 부재 정도였다. 그 사랑의 부재는 모래시계와도 같아서 성인으로 성장할수록 모래시계의 잘록한 허리는 벌어진다. 나의 경우는 타인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가치 없는 쓰레기처럼 아래로 흘려보냈다. 그도 그럴것이 별것 없는 잠자리를 위한 도전이거나, 나의 부유한 배경을 매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오로지 유하만이 마나미가 만들어 놓은 경계선을 무시하고 들어온 특별한 케이스이다. 이미 아래로 내버려진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인 유하였지만, 또 다른 모래알의 유하가 채워졌다. 그런 수많은 모래알이 가득 채워져 나는 더 이상 비워낼 것도 받아들일 것도 없었다. 하루의 모든 것이 그의 관심과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식으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유하의 경우는 타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결핍 증세를 보일 정도로 목말라했다. 매번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마나미는 알 수 있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매번 농도 짙은 사랑을 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유하의 결핍형 모래시계는 채워지지 않았다. 모래알들이 중력의 몇 배 속도로 빠르게 쏟아져 내려갔다. 생각해 보면 난 그에게 단순한 속임수를 썼어야 됐을지도 모른다. 전과 같이 동일한 사랑을 보낸다. 조금의 희생을 덧칠해서. 그랬다면 유하는 그것이 농도 짙은 사랑이라고 속았을지도 모른다.
다시 유하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니 심난함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휴지통에 버린 편지봉투를 주워와 그 문을 닫아 버린다면… 그의 온기와 감정을 저 깊은 곳으로 다시 놓고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이런 어지러운 감정을 누군가와 함께 토해내고 싶었다. 그에 맞는 한사람.
지금 나는 츠마상을 보기위해 시부야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