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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n 10. 2024

모두가 외면한 늙은 향유고래의 절규

그림책 <세월 1994-2014>

일주일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한다. 한 회원 깨서 눈물을 흘리며 읽은 좋은 책이 있다며 책의 한 구절을 읽어 주셨다.

‘그러나 나는 작살 꽂힌 향유고래처럼 점점 더 바닷속으로 거꾸러졌다.’

그렇게 그림책  <세월 1994-2014>를 만났다.


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무엇하나 선명하게 밝혀진 것 없고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지는 자가 없다. 우리에게 점이 되어 흩어진 그 시간들을 부여잡고 진실이라는 실체를 마주하고자 하는 유가족들의 힘 잃은 절규만이 남아있다.


 <세월 1994-2014>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출간한 그림책이다.

기억과 추모의 다큐멘터리 그림책.

1994년 일본에서 태어나 18년 넘게 운항했던 세월호가 한국의 바다에 투입된 지 1년여 만인 2014년, 304명의 소중한 생명과 함께 침몰하기까지, 세월호의 일인칭 시점으로 참사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돌이켜보는 다큐멘터리 그림책.

(출판사의 책 소개)


책의 글과 그림은 배를 늙은 향유고래에 비유해 많은 상징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배의 탄생부터 노후화, 불법개조, 침몰의 징조, 그리고 마지막 침몰의 순간까지를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부분을 읽으며 분노했다.

‘그날이 오기 전 나는 끊임없이 불길한 징조를 보내 구조를 요청했다.’

배가 보낸 신호를 과연 그들은 몰랐을까? 알고도 묵인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과연 유병헌 일가와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 몇몇 공무원의 책임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을까? 그들을 처벌하고 밝혀진 진실이 있었나? 국가는 무엇을 밝히고 무엇을 책임졌으며 어떻게 사과했는지 기억에 없다. 오히려 유가족들의 진실 규명 요구를 묵살하고 사건을 덮어버리기에 급급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세월호와 관련한 진실 규명이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국가와 정치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싶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데 끝까지 싸운 정치인이 있는가? 그날의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 최상위의 책임자들을 응징한 정부가 있는가?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기본 정신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정치와 정부는 여태 없었다.

만약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과 강력한 책임자 처벌이 있었다면 이태원참사와 채상병 사건 앞에 이리도 뻔뻔한 정부의 민낯을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증거다. 꿋꿋이 버티고 서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죽음,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참사를 끝끝내 증언할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들이다. 반드시 증언할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책에서 점으로 표현되어 흩어지는 그날의 기억들을 촘촘히 모아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고, 결국에는 진실이라는 실체를 맞이할 것이다.


4.10 총선에서 헌정사상 초유의 결과가 나왔다. 국민들이 당신들에게 막대한 권력을 이양한 이유를 가슴깊이 새겼으면 한다. 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왜 존재하는지 늘 각성하고 가슴의 베지가 국민의 명령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모두가 외면한 늙은 향유고래의 절규를 더이상 외면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4년을 희망해 본다.


아주 오래전 방송인 김어준은 이런 말을 했다.

“신발을 신고 나서는 순간부터 나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는 정치 탓이다.”


앞으로 4년 정치 탓이 아닌 정치 덕분인 세상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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