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낯익은 여자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반말이다. 그녀가 동안인지 내가 동안인지 모를 일이다.
“안녕하세요.”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존대로 인사했다.
“무슨 일 있었어? 근데 자기 얼굴 좋아졌다.”
"아, 운동을 못해서 몸이 많이 불었어요. "
나는 거기다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앉았다. 참 모지리다.
”그러게, 여기저기 군살이 보인다. 자기는 평생 날씬할 것 같더니. “
근데 저 여인은 누구일까?
사우나에서 어지간하면 다 '자기'다. 얼굴에 주름이나 기미, 뱃살의 정도로 또래를 판단하는 그녀들만의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간단히 샤워하고 내 목욕의 순서에 따라 온탕에서 10분간 반신욕으로 땀구멍을 열었다.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사우나로 들어간다.
벽에 붙은 돌의자에 앉은 여자들은 이제 갓 들어왔거나 낯선이 들일 경우가 많다. 높은 온도에서 한 번 열을 훅 올린 후 바닥으로 내려가 방석을 깔고 앉는다. 그녀들이 수다 삼매경에 빠지면 언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녀들을 진심 존경한다. 기본 20분부터 시작이다. 위쪽 돌의자 가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으려는데 나를 아는 체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 저기 살 좀 붙었지? 그렇게 운동을 하더니 몇 달 안 봤다고 몸 변한 거 봐. "
그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그리고 내 몸을 스캔한다. 어디라도 숨고 싶다.
"요새는 운동 뭐해요? "
"저 좀 아팠어요. 못하고 있습니다. "
나 뭐래니?
대체, 왜, 어떻게 나의 운동 사정까지 알고 있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10분쯤 지나 몸을 헹구고 냉탕에 들어갔다. 낯익은 반말녀가 따라 나왔다.
“언니, 근데 저 어떻게 아세요?”
“오다가다 보면 다 아는 거지. 그리고 사자머리 언니가 자기 이야기 자주 하던데.”
“김말숙 언니요?”
“그 언니 이름이 김말숙이야? 몰랐네.”헛웃음이 나왔다. 김말숙 씨가 사우나 방송국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내가 용기 내어 물었다.
"그런데, 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연세는 무슨, 내가 노인네야. 나 마흔아홉"
“저 오십이요.”그녀가 당황하며 말했다.
“워낙 동안이라 몰랐어요. 하긴 살이 좀 오르니까 나이가 있어 보이긴 한다.”
이 정도면 까는 거지?
나는 그녀들의 정겨움이 좋다. 어떤 이는 불쾌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쭈뼛거리며 자리를 잡지 못할 때는 엉덩이를 밀어가며 공간을 만들어 주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 권하는 친근함이 좋다. 아줌마들이라 가능하다. 나이가 들어 멀리 있는 친구 보다 매일 얼굴을 보는 누군가와 친해진다. 서로의 이름을 알지도 못해도 가능하다. 나는 구석에 앉은 숫기 없는 여자에 불과하지만 말 한 마디 건네주는 마음이 좋았다. 옷을 입고 나오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매점언니, 근데 저 파랑 사우나 모자 쓴 언니 이름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