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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May 06. 2024

나는 나로 살고 싶다.

그림책 <슈퍼거북>

“내일 죽는다면 가장 후회되는 게 뭐야?”

“나 내일 꼭 죽어야 돼? 음… 꽐라 돼서 교감선생님 차에 토한 거? “

”하하하하. 당신답다. “

그녀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호탕하다.

”왜? “

”나는 열심히 산 게 너무 후회가 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하나 못 돌보면서 그렇게 살았을까… 나 이제부터 대충 살라고.”

그녀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이고 훌륭한 교사이자 맏며느리다. 홀로 되신 친정어머니를 살뜰히 모시는 막내딸이다. 자신이 맡은 역할 어느 하나 대충 하는 법이 없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또 얼마나 살뜰히 챙기는지…

“나처럼 막살아. 그래도 살만해.”

농담처럼 그녀에게 답을 주었지만 나의 경험 상 인생은 좀 대충 살 필요가 있다.


수치스럽고 피 마르는 가난과 아버지에게서 내가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공부였기에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다. 보통의 아이들이 다 가지는 흔한 참고서 하나 자유롭게 살 수 없던 형편은, 나를 더 간절하고 독한 아이로 만들었다. 나는 눈빛이 반짝이던 아이에서 날카로운 어른으로 변했다. 그리고 교사가 되었다.


정말 치열한 삶을 살았다. 능력을 넘어서는 사회인으로서의 욕심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내 아이들의 정서를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건 내 아이들의 눈빛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을 때다.  나를 내려놓은 순간부터, 아니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버림으로 진짜 내 인생이 시작되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거북의 성실함이 아니다. 토끼는 상대를 보고 달렸고 거북이는 땅만 보고 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끼의 실수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토끼를 이기고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거북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슈퍼 거북’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대중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욕심과 부담. 과연 행복으로 갈 수 있을까?

피와 살을 깎는 연습을 하던 거북은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본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진다. 거울 속에서 가짜 영웅이 되기 위해 망가져버린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되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과한 에너지를 한 번에 쏟아부으면 과부하에 걸리고 결국에는 망가져버린다. 나는 그랬다. 슈퍼거북이 되지 못한 거북이처럼.


인생은 목적지를 정해 놓고 순위를 정하는 달리기가 아니다. 남에게 보여주려 재주를 부리는 서커스는 더더 욱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순간들을 즐기고 감사하며,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는 산책이라고 생각한다. 산책 길은 혼자 걸어도 좋고, 사랑하는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걸어도 좋다.

내가 마주한 현실이라는 아름다운 시간의 풍경을 즐기며 소풍처럼 다녀가는 것.


소풍날 비가 오기도 하고 바람이 불기도 하지만, 전날 밤의 설렘은 늘 한결같았다.

내일이라는 또 다른 소풍의 설렘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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