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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과부 순자 씨

산 사람은 산다. 2

by 정말빛 Feb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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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시고 있거라, 나는 고추 씻어서 널어야 한다.”
성격이 깔끔한 순자 씨는 따 온 고추를 물에 여러 번 헹궈 불이 빠지게 바구니에 담았다. 마당에 검정 깔개를 쭉 펴더니 정성스레 고추를 널었다.
“내가 요새 이 재미에 산다. ‘몸 움직이면 돈이다.’ 생각하니 힘든 줄도 모르겠다. 색이 참 예쁘제?” 옆에서 뭘 도와야 할지 몰라 얼쩡거리는 내게 혼잣말인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했다.

일을 마친 순자 씨가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녀의 피부는 검게 그을려 있었고 옷으로 가려진 속 살만 아기 피부처럼 뽀얬다. 편한 원피스 차림으로 거울 앞에 앉은 순자 씨 얼굴이 정말 많이 상해 보였다. 밭일을 하지 않을 때는 저 정도 까지는 아니었는데.
“엄마 얼굴이 많이 탔네.”
“이 쪽에 기미 올라오는 거 봐라. 나이가 열 살은 더 들어 보이제? 내도 미영이처럼 뽀야믄 좋겠그만. 겨울에 병원 다녀오면 내도 그리 되긋지. 니도 갈래? 3개월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는데 같이 가자. 나이 들수록 여자는 피부과 고와야 한다. 젊어서 미리 관리해라.”

순자 씨가 저런 사람이었나? 여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참고 사니라 참 힘들었겠다. 사우나 언니들은 주기적으로 피부과 시술을 받고 성형한다. 그녀들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 시골 사는 순자 씨에겐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니, 잠시나마 철없다고 여겼던 내가 부끄러웠다. 스무 살로 살라고 말해놓고 속으로는 돈 걱정이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춘길 씨를 보내고 긴 시간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밝은 순자 씨의 미소와 작은 소망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혹시 돈이 모자라면 큰딸이 좀 내라.”
“돈 만큼만 하면 되지. 얼마나 이뻐지려고?”
“그럼, 얼굴 반쪽만 해 준다면 우짤끼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순자 씨가 깔깔 웃는다.

산 사람은 사는 게 맞다. 순자 씨처럼 밝게 사는 게.
그날 밤 나는 철없는 순자 씨를 좋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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