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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l 03. 2024

어머니가 누구시니?

나는 1975년생, 엄마는 1962년생.

우리 엄마는 1962년생이다. 한국나이로 63살

나는 1975년생이다. 한국나이로 50살.

여러분들의 머리 돌아가는 소리와 놀라서 입을 막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학창 시절 내내 담임선생님들이 나를 따로 불러 약간은 동정 섞인 눈빛으로 가족관계를 물었다. 

“어머니가 새어머니니?”

“아니요. 우리 친엄마예요.”

선생님의자가 뒤로 자빠진다. 


엄마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어느 재벌가의 숨겨진 딸로 없는 사람처럼 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출생신고가 되었다…라고 하면 어떨까?

엄마는 시골 농사꾼의 5남매 중 셋째 딸로 자랐다. 위로 언니가 넷이나 있었지만 모두 세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그 옛날 아이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병원이 없었고 지식이 없었고 돈이 없었던, 시골 무지렁이들의 삶은 자식 잃은 슬픔을 마음에 오래 간직할 새가 없어 마음에 묻는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서했을 것이다.

딸을 줄줄이 잃은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죽을 거라며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죽지 않고 살아냈다. 국민학교 입학할 나이가 되어 출생신고를 하러 갔는데 면서기가 절차가 복잡하다며 출생신고 하러 온 날 태어난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 우리 이여사는 63살의 나이로 산다.


사람이 나이를 따라가는 건지 엄마는 유난히 동안이다. 

엄마와 외출길에 나서면 엄마는 어디 있냐는 질문을 질리게 받았다. 지금도 우리 이여사는 곤양면 맥사리의 핵인싸로 살고 있다. 멋 내기를 좋아하고 자기 관리 또한 철저한 분이다. 하루 두 끼만 드시고 30분 이상 걷기 운동을 하신다. 

남의 땅을 빌려 몸을 잠시도 놀리지 않는 미니 농부이지만 계절이 바뀌면 피부과에 가서 시술을 받는다. 내가 옷 욕심이 넘쳐흐르고 마른 몸을 고집하는 건 엄마를 보고 자란 탓도 있을 것이다.


면소재지 식당 박여사님은 곤양면 유지로 원래 부자인 사람이다. 자그마한 키에 몸이 날렵하다. 엄마와 박여사님 사이에서 패션 신경전은 대단하다. 모임자리에서 더 빛나기 위해 두 할머니는 늘 서로를 염탐한다. 나는 늘 긴장해야 한다. 엄마의 왕관을 지켜 줄 수호신이자 코디역할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읍내까지 걸어가는 30분 길을 런웨이 삼아 이여사의 발걸음이 낭창 거린다. 발걸음에 약간의 뽐냄이 묻어있다. 새삼 귀엽다.


사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자식들을 외지에 보내고도 매 끼니 아버지 따뜻한 밥상을 준비하고 내 아이 둘을 키우느라 집에 묶여 세상을 모르고 살았다. 스무 살에 시집와 바로 나를 낳고 평생 누구 엄마와 누구 할머니로만 살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이름을 불러준다.


우리 정희 씨의 두 번째 스무 살을 늘 응원한다. 그녀의 작은 사치와 허영심을 지켜 줄 수 있는 딸이어서 다행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젊은 세월을 사주고 싶다.

정희 씨가 다시 사랑을 하면 좋겠다. 좋은 남자 만나서 예쁘게 연애하면 좋겠다. 

시집은 안 보내기로 했다. 

“엄마, 시집은 안 보내 줄 거다. 혼수 안 해줄 거니까 꿈도 꾸지 말고  혼자 살아라. 연애만 하고.”

정희 씨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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