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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l 01. 2024

추억은 깻잎 깻잎

추억의 양념에 잘 재워진 깻잎 김치

서울국제도서전을 관람하려 오랜만에 서울로 갔다. 우리나라 활자중독자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티켓팅을 하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각 부스에서는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은 선택한 게 아니었다. 숨이 막히고 식은땀이 나더니 두통까지. 한 시간 남짓 행사장을 돌아보고 포기를 선언했다. 나에게 우울과 공황이 있다는 건 살아가며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한다.


시골사람 서울 간다고 기차표 예매도 마친 터라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낼까 고민을 하다 사촌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게 못난이 콤플렉스를 심어준 바로 그녀다.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단발에 달려와 주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낮술을 위해 주변 펍으로 갔다. 마시 않을 수 없는 날이잖아요.

우리의 간단한 한잔은 기차표 예매를 취소하게 했다. 늘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추억들이다. 알을 다 빼먹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옥수수 대를 빨면 단맛이 난다. 그렇듯 우리의 추억은 우려도 우려도 달큼하다. 같은 시간의 테두리 안에 살며 추억을 공유하는 자들의 연대감은 공고하다.


남은 이야기를 위해 그녀 집으로 향하는 길 빗줄기가 쏟아지는데 나는 평생 못 볼 진귀한 구경을 했다. 지인이 오늘 선물한 가방이라며 비에 젖을까 가방을 비닐로 쌌다. 같이 다니기 부끄러웠다.

그녀가 싸맨 건 가방이 아니라 선물한 이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귀찮을 법도 한데 굳이 장을 봐서 집에 거한 안주 한 상이 마련되었다.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정갈한 상차림. 또래에 비해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는 것 또한 그녀의 부지런함과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노릇하게 부쳐진 감자전이 유난히 바삭 거리고 맛났다.

음식은 눈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먹는다.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오늘은 맛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환상적인 날이다.

"언니, 깻잎 산 거야? 되게 맛있다. 우리 아들 거 좋아하는데."

"진작 말하지. 남은 거 다 싸줄 건데. 언니는 또 담으면 되니까 다 가져가라. 다음에 새로 담아줄게"

아침에 잊어버리고 챙기지 않을까 냉장고에 메모를 붙인다. 우리의 이야기는 늦은 밤까지 끝나지 않았다. 흥이 넘치는 그녀와 춤을 추며 허우적거렸다. 고고장을 뻔질나게 다니던 그 시절 인싸와 박치에 흐느적거리는 나의 모습은 누가 볼까 부끄러운 장면이다.


5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 불편함이 없는 사람. 깻잎을 정성스레 한 장 한 장 씻어 물기를 턴다. 깻잎 한 장에 추억 한 스푼. 나를 기억하며 그녀는 깻잎김치 담그기에 분주하지 싶다.


새벽에 동영상 하나가 날아왔다.

"이모, 어제 너무 귀여우셨어요."

이 조카녀석은 안티였다. 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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