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주혜 May 29. 2023

불안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울과 불안으로 인해 일 년 반 남짓 치료를 받았었다. 의사가 제시한 다음 내원일을 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울증으로 인한 진단서가 필요할 때에, 담당의는 언제나 다음의 문구를 넣었다.


'상기 환자는 성실하게 치료에 임하고 있으며...'


희뿌연 안개를 닮았을 것 같은 보이지 않는 우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몹시도 간절하게. 의사가 2주 뒤에 병원에 오라고 하면 때에 맞춰서 갔고, 3주 뒤라고 하면 그때에 맞춰서 성실하게 진료에 임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 술도 먹지 않았고, 커피도 가급적 삼가야 한다 하여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날에 귀하게 마셨다. 그러나 내가 해볼 수 있는 최선을 해보아도 내면에서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불안과 우울은 위세 좋게 내 안을 점령하는 듯 보였다. 내가 애써 해 보는 일들은 마치 허공을 향해 내지르는 소리 없는 비명같이,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하고 흐트러지는 허무를 경험하게 하였다.


도대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알고 싶었다. 열심히 치료에 임하면 나아지리라는 기대감 마저 스러지게 될까 두려웠다. 왜 낫지 않는 거냐고 묻는 질문이 바보 같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입 주변을 끈적하게 맴돌았지만, 희미한 기대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하고 싶어 의사에게 물었었다.


“선생님, 왜 저는 불안을 쉽게 느끼는 걸까요? 불안한 상황이나 기분이 아닌데도 불안감이 자꾸 올라와요.”


의사는 이런 질문을 숱하게 듣기라도 했는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서는 다소 상투적이지만 명랑하게 대답했다.


“그 질문은 당뇨가 있으신 분께서 왜 자신에게 당뇨가 왔느냐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내가 불안에 취약한 기질로 태어난 것이에요. 그러니 평생 다루어야 할 나의 타고난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불안을 대해야 합니다.”


대답은 명료하고 명확했다. 고민의 여지는 없었고, 그저 받아들이는 일만 남아 있었다. 한마디로 그냥 나는 불안과 함께 살 인생이라는 말이었다. 불안의 스위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민감하게 작동할 테고, 한번 작동하기 시작하면 활성화 정도가 높을 것이라는 것. 우울과 불안장애를 제대로 겪어보고 나서 얻은 것이라면 나의 타고난 선천적 기질에 대한 깊이 있는 체험이랄까? 불안과 우울에 잠식된 나라는 인간을 똑똑히 마주했었다. 어찌 보면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내 인생에서 겪어야 할 과정이었나보다. 지금 겪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겪었을 그런 일. 반드시 거쳐야하는 그런 일.


더이상 나는 왜 불안하고 자주 우울한 인간이냐고 묻지않게 되었다.




현재는 진료를 보지 않아도 되고, 약을 먹지 않아도 꽤나 쾌활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약 일 년 반에 걸친 시간 동안 나를 잠식하듯 집어삼켰던 우울과 불안은 삶의 끝에서 경계로, 경계에서 모퉁이로, 모퉁이에서 돌아 머물러보고 싶은 삶의 무대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이제서야 삶에 서있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지난날의 일기와 글을 통해서 불안의 스위치가 켜질 때 나의 모습들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그런 시간과 맞닥뜨렸을 때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소위, 자기 자신을 구하는 방법을 터득한 셈이다.


불안과 우울의 스위치가 나도 모르게 'on'이 되고 게이지가 차오를 때면, 항상 먹는 일부터 부실해졌고 수면의 질은 형편없어지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요구받는 일들에 대해서는 해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해내고 그 외의 다른 일에 쓸 힘은 남아있지 않아 집에 틀어박혀 있고만 싶은 나를 발견할 때면, 불안이라는 친구가 가까이 와있음이 감지된다. 한동안은 불안이라는 친구와 일상을 공유해야 했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면 무력한 일상이 리듬이 되어버린다. 그 리듬을 타버리면 다시 돌아오는 것은 꽤나 고된 일이다. 무력하여도 우울의 리듬은 속도가 더디지 않다. 스며들듯 순식간이다. 알아차려지면 우선 해야 할 것은, 억지로라도 매끼니의 밥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사명감으로 나를 먹여야 했다. 그게 심지어 연료를 넣어주는 느낌일지라도 나를 먹이는 일은 고귀한 일이었다.


두 번째는 움직여야 했다. 걸음이 향하는 곳이 없을지라도 몸에 알려주어야 했다.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아, 웅크려 움직이려 하지 않으려 하지만, 내 멀쩡한 몸은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다리를 끌고 걷다 보면 심장박동도 빨라지고 은근한 땀도 피부에 맺힌다. 그러면 마음이 내는 우울의 파장보다 생생한 신체의 물리적 파장이 잠시 우위에 있게 된다. 우울의 점령을 잠시나마 탈환하는 작업이다.


세 번째는 쓰는 일이다. 날것의 우울과 형체 없는 불안을 기록한다. 아무도 읽지 못할 곳에, 나도 다시 읽지 않아도 된다는 후련함을 장착하고 의식이 읊어주는 대로 적어 내려가다 보면, 나만을 위한 삶의 기록이 된다. 우울과 불안으로 점철된 문장들만 빼곡하게 있다 하여도, 시간이 지나 읽어보면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나의 불안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그 불안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면, 알아볼 수 있고, 타이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잠시 내게 머무른 이 친구를 떠나보내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다시 찾아오긴 할 테지만).




불안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사는 삶은 사실상 초조한 긴장의 연속이다. 때로는 불안의 감각을 캐치해 내는 전용 촉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종종 의심스럽기도 하다. 별것 아닌 일들에 쉽게 상처받기도 하고 홀로 전전긍긍해하기도 한다. 마음의 결이 하도 날카로워지는 날에는 보는 내가 위태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불안을 어느 정도는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나의 우울 역시 어느 정도 애정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불안과 우울이라는 친구가 찾아올 때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가 있었고, 새로운 시선을 열어 주었다. 삶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때엔, 쉽게 떠올리지 못할 질문들에 대해서 그들은 물었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지극히도 일상적인 생활을 해내는 것으로 대답하여야 했다. 일단 살아내기만 하면, 언제가 되었든 답은 구해졌다. 나를 살게하는 질문들은 불안과 우울 속에서 건져올려진 것들이었다.


돌아보니, 불안과 우울의 위를 걸으며 지나왔던 시간은 진득거리듯 괴로웠지만 고통스러웠던 만큼 내어준 것도 있었다. 그들이 던져준 질문과 생의 의미에 대해서 답하면서, 삶의 방향은 모서리를 틀었고 나는 지금 이 길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마음이 내키는 대로 따라 걸어보고 있다. 형체 없이 뭉그러져 보이던 내가 이제 어느 정도 어떤 사람인지 윤곽이 보이는 것만도 같다.


먹고, 움직이고, 쓰는 일을 계속하면서 그렇게 나는 나의 불안과 친구가 되어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의 소멸이 가당키나 한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