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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Jun 06. 2023

여름

생명이 춤추는 계절

 비가 쏟아져 내리고 난 후, 투명한 공기를 거침없이 지나온 햇빛은 대지를 달궜다. 한낮임에도 어둑했던 하늘은 물러가고 새파랗고, 새하얀 하늘이 드러나면 땅 위의 빗물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려 애를 썼다. 열기를 동력 삼아, 열기를 머금고서는 물이 피어올랐다. 흙냄새와 열기가 뒤섞인, 땅에서 피어오른 공기가 한 번의 호흡이 되어 폐에 닿는 순간의 감각은 온몸에 여름이 왔다고 전율하듯 단번에 알려주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의 경계를 지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이었다. 여름의 리듬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8월도 아니었고,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루는 밤은 아직 오지 않았고, 선풍기 앞에 머무르고 싶은 그런 날이라기엔 서늘했지만 여름은 시작되어 버렸다. 아직 오지 않은 여름과 이미 와버린 여름 사이의 경계에서 그동안 알아보지 못했던 풍경들과,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감각들은 여름에 대한 인상을 그려나갔다. 흐릿했던 한 계절에 짙고, 층위가 다른 겹겹의 푸른 색들이 입혀져 나갔다.



 짙은 녹음을 향해가는 아직은 연두에 가까운 나뭇잎들, 한 번의 비가 내리고 나면 물을 움켜 삼키듯 먹고 자라나는 초록들, 매일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태양과의 거리, 차가운 커피잔 표면 위로 맺히는 물방울들의 개수가 늘어가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일, 내 몸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폭한 열기가 전달하는 짧지만 깊은 박동을 고스라니 느껴보는 일, 선풍기 전원을 고민없이 누르고 뜨겁게 달궈진 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고 잠시 머무르는 순간은 여름의 선명하고도 분명한 감각이었다.



 여린 것들이 굵고 무성해져 가는 풍광을 매일 바라볼 수 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여름은 소멸과 잊혀짐과는 거리가 먼 환희의 계절이었다. 자라나고, 짙어지고, 뻗어나가며 생의 에너지를 응축해 나가는 생명의 감각이 힘 있게 춤추는 계절이었다. 살아있음을, 자라나고 있음을 그 어느 계절보다도 선명하게 보여주는 여름이라는 계절의 인상이 새겨지는 날들이 하도 찬란하여 그 찬란함의 한켠에 다시 되돌아가고 싶어질까 오늘의 인상을 끄적거린다.


환희를 닮은 오늘이라는 계절을 기억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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