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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Nov 07. 2023

뜨개질하기 참 좋은 계절

실과 바늘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건, 온화한 이들만의 전유물같이 느껴졌다. 형태를 갖추지 못한 가느다란 실을 엮어서 누군가를 따듯하게 감쌀 목도리, 조끼, 스웨터와 같은 것들이 된다는 것은 손끝이 펼쳐내는 경이로움이었다. 불가해보이는 영역의 무엇이면서도 분주한 마음은 쉽사리 허락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뜨개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을 짧게 표현하자면 '끝맺지 못한 실패'라 말하고 싶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설프게나마 떠내려갔던 긴 목도리는 마무리하는 방법을 몰라 한참 동안 바늘에 목도리를 껴놓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물어볼 데는 없고, 마음이 아쉬워 시장 털실가게로 용기 내어 가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어린 꼬마는 돈 안 되는 성가신 존재였었나보다. 제 손으로 만들어낸 목도리를 목에 감아보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끝을 맺지 못하고 먹먹한 마음과 함께 실뭉치를 둘둘 말아 구석에 박아두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이 내가 가진 뜨개질에 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거의 30년이 지나, 다시 바늘을 손에 쥐게 된 건 끝맺어보지 못한 아쉬움의 만회를 위함이었을까? 단순히 실패에 대한 기억을 성공으로 치환하고자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실을 손에 감고 기다란 바늘을 쥐고 겉뜨기, 안뜨기를 하는 동안의 내 마음이 털실의 보송한 표면과 닮아있다 생각했으니, 이것은 설렘이었다. 'kfb'라고 하는 바늘 코수를 늘리는 동작을 할 때면 마치 내가 아주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아 우쭐해지기까지 하는 나의 이 어린 마음을 어찌하면 좋을지~ 웃음이 나곤 했다.


그 예전과 마찬가로 지금도 뜨개질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그러나 뜨개질을 배우기 위해 용기 내어 시장 털실가게에 가야 할 필요도 없이, 세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배움'에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해있었다. 유튜브에는 뜨개질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는 영상들이 넘쳐났고 그중에서 도전해 볼 만한 것을 하나 정해서 영상이 끝날 때까지 크리에이터가 안내하는 대로 진득이 따라만 가면 어느새 어떤 형태의 복실복실한 무엇이 손에 있게 될 터였다.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쉬움을 맺어볼 기회였다.


'뜨개인'들이 사는 세상에 발을 디디게 되고, 모르고 살던 세계가 열리면서 쏟아지는 정보로 인해 현기증이 나기도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신중을 기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스웨터 레시피를 선택하고 솜사탕 색깔의 털실을 골랐다. 좀 유치하면 어떤가 싶을 만큼의 어린 마음이 묻어있는 동시에 커버린 마음도 이어 줄듯한 아름다운 색깔의 실이었다. 6가닥의 보드랍고 고운 색깔의 실을 하나로 잡고 스웨터를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코 잡기부터 시작해서 바늘 두 개를 수도 없이 오가며 뜨개질을 하며 한단이 끝나면 무엇이 되어가고 있나 살펴본다. '여기가 스웨터의 어디쯤일까?'라는 질문에 무엇이라 대답할 수 없었고, 한참을 한참을 떠내려가고 나서야 목과 어깨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급증은 뜨개질 앞에서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되어간다'라는 믿음으로 옮기는 한 땀, 한 땀의 정성은 결국 그 모습을 드러낸다. 뜨개질은 기대와 묵묵함이 보여주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재촉한다 하여 빨리 옷이 떠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손이 서두르면 소위 ‘삑사리’라 불리는 실수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여지없이 기껏 떠내려갔던 실들을 풀어서 삑사리가 났던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은 다반사다. 한 땀 한 땀 정확하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리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너무 빡빡하지도 않게 각자 손의 속도와 힘을 유지하는 기술을 발휘해야 하는 행위다. 자신의 속도와 힘을 잃어버리면 고스란히 티가 났다. 삶의 대부분의 것이 그러하듯 뜨개질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손을 타는 것들은 대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보여주니까.


아직 팔도없고, 몸통도 없는 ~ing

어깨를 타고 내려가 몸통 부분을 떠내려가고 있다. 같은 동작의 무한 반복이라 속도는 더디지만 어느새 실을 잡고 있던 만큼의 시간이 엮여서 조금씩 옷이 자라나고 있었다. 솜사탕 색깔의 실로 엮은 스웨터를 입은 내 모습도 상상해 보고, 아직 팔도 없고 배도 가리지 못하는 조각을 거울에 대본다. 올겨울에 이 스웨터를 입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의 친구는 요즘은 크롭탑이 유행이니 이만 뜨고 마무리해서 얼른 입어보라는 솔깃한 제안을 했지만, 자고로 배는 따듯해야 하기에 조금 더 지루하지만 정교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따듯한 것들을 떠야겠다고 다짐한다. 만나지 못해 서글픈 마음을 털실을 손에 쥐고 사랑하는 이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다니! 그리고 마음으로 엮어낸 선물을 할 수 있다니! 아직 스웨터를 끝내지도 못했는데 아이의 목에 둘러줄 목도리를 시작해 버렸다. 목도리는 쉬울 줄 알았는데 목도리의 끝단이 예쁜 '흔들코'를 배울 때 정말 마음이 흔들렸다. 아들은 내가 흔들코로 뜨지 않고 일반코로 떠줘도 뭐라 안 할 텐데... 하면서 흔들코 목도리를 접을까 싶었지만, 이것은 도전이고 모험이니 또 다른 시작을 해보았다. 이게 뭐라고 나는 4번 만에 성공했을까. 어쨌든 아들에게 너무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벌써 보람이 가득하다. 또다시 진득하게 떠내려갈 일만 남았다.

시간, 손길, 온기가 엮어내어 몸을 감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 계절이어야 했다. 참 뜨개질하기 좋은 계절이구나 싶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누군가를 생각하며 뜨개질을 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표현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올해 겨울은 상당히 따수울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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