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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다 Jul 02. 2021

재택근무자와 프리랜서의 동거

퇴근하고 반갑게 다시 만나는 삶을 꿈꾸다


다른 집들에 비해 우리 집은 평일 한낮에도 인구밀도가 높다. 가족 구성원인 성인 셋과 유아 한 명 중,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3세 딸을 제외하고는 성인 셋 모두 집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프리랜서 강사인 나와 프로그래머인 남동생만 있었는데, 유일한 직장인인 남편까지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졸지에 성인 셋이 근무하는 공유 오피스가 되었다. 그렇게 지난 9월부터 10개월째 재택근무자와 프리랜서들의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


평소에는 점심을 같이 먹는 일이 거의 없는데, 오늘은 셋이 나란히 열무국수를 먹다가 문득 남편한테 한 집에서 이렇게 복닥거리며 일하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뭐... 난 좋은데?"라고 시큰둥하게 이야기하는 그에게 프리랜서랑 같이 일하느라 힘든 건 없냐고 좁혀 물었더니 답변이 줄줄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프리랜서와 재택근무자,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빠로서의 입장차가 동시다발적으로 혼재한 문제들이었는데 몇 가지는 꽤 흥미로웠다.




재택근무자의 고충 1.

프리랜서와 사는 재택근무자로서 남편이 토로한  번째 고충은 의외로 '점심밥'이었다. 나도 직장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직장인에게 점심밥이란 붕어싸만코에  팥앙금처럼 부분이지만  전부기도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프리랜서들은 아침부터 작업한다고 카페로 나가버리거나, 집에 있어도 하던  마저 끝내고 이따가 알아서 먹겠다고 하니 타이밍이 맞지 않는 거다.


더불어 집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집밥'을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고(우리 집은 주말에만 요리한다), 돈이 있다고 모두가 배달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우리 집은 시골이라 음식 배달이 안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밖에서 동료들과 노닥거리며 한 끼는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리웠나 보다.


재택근무자의 고충 2.

다른 하나는 내가 가끔 하는 참견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난 정말 듣고 싶지 않은데, 아무리 문을 꽉 걸어 잠가도 남편이 근무하는 실황이 생중계되다 보니 가끔 참견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엊그제 남편이 직원들 인터뷰를 위해 전화 돌리는 걸 듣게 되었다. 모든 통화에서 같은 내용이 오갔는데 남편이 자꾸 "네,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글이 아닌 입말에서 '-하였습니다'라는 표현을 들으니 너무 어색해서 웃음이 났다. 그러다 통화를 마치고 화장실을 가려고 나오는 남편을 보자마자 참았던 웃음이 터져버렸다. "남편, 이해 했습니다면 했습니다지, 이해하였습니다는 어쩐지 좀 웃기지 않아?" 재택근무자씨는 웃는 내게 정색을 해 보였다

.  



프리랜서의 고충 1.

그럼 반대로 프리랜서인 내가 재택근무자와 한 공간에서 일하며 불편한 점은 뭐가 있더라. 일단 공간적인 침해다. 재택근무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내 컴퓨터 책상과 작업실을 남편에게 내주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으로서 더 버는 쪽에 투자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원래는 내가 집에서 온라인 강의도 하고 작업도 할 요량으로 산 컴퓨터 책상과 스크린은 남편의 줌 회의실이 되었고, 나는 거실 식탁으로  밀려났다.


이 거실로 말할 것 같으면 재택근무자가 화장실을 가거나 탕비실 격인 주방을 갈 때 꼭 지나야 만 하는 곳으로 내 신경을 건드릴 때가 많다. 특히나 일하다 잠깐 쉬려고 거실 소파에 발라당 누워있을 때 재택근무자가 나오기라도 하면 괜히 뺑끼 쓰다 걸린 신입처럼 눈치가 보일 때도 있다.


프리랜서의 고충 2.

그래, 맞다. 괜히 눈치가 보인다! 왠지 한가해 보이면 안 될 것 같고, 나도 재택근무자만큼이나 쉬지 않고 뭔가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초반에는 하다못해 하원한 아이와 놀아줄 때도 방 안에서 장학사 선생님이 평가하고 계신 것처럼 에너지를 과하게 써서 놀아주고는 밤에 나가떨어지는 날이 많았었다.


결론.

결혼 8년 차. 처음으로 평일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남편과 온종일 붙어있는 찐 동거를 하고 있다. 우리 둘 다 소속만 다르고 같은 업계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나중에 나이 들면 뭐라도 같이 차리자고 종종 얘기했었는데...... 찐 동거 10개월 만에 그 발언은 철회했다.


일터에서 사랑까지 하지는 말자고. 부디 서로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퇴근하고 반갑게 만나는 삶을 살자고. 재택근무자와 프리랜서들의 동거는 코로나 특수를 노린 일회성 상품으로 끝내기로 다짐한다.


비정규가족 탄생 D+349일. 우리 가족은 모두 안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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