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제주에서 3주살이 - 27일차

by 소슬바람




그날이 왔다. 서울살이를 하러 가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멍 때리다 짐 옮김이에 사진을 업로드해야 한다는 게 생각났다. 부랴부랴 짐을 싸고 사진을 찍어 업로드했다. 그리곤 다시 짐을 풀고 퇴실시간까지 방에서 쉬었다. 밤 비행기고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할 곳을 생각해 봤다. 사계에 다시 한번 가고 싶은데 2시간 30분 정도 버스를 타야 했고 서귀포로 가야 하는 거라서 패스했다. 서귀포는 포기하고 함덕, 김녕, 삼양, 제주시내쪽을 돌기로 했다. 첫째 주에 친구와 방문했던 호끌락다락에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퇴실시간에 맞춰 방에서 나오니 사장님이 아쉽다며 배웅을 해주셨다. 어쩌다 보니 여자 사장님께 휴직을 하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게 됐고 사장님은 행복하실 바란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10일 동안 내 동네였던 세화를 뒤로하며 버스를 탔다.




오픈 시간에 맞춰 식당에 도착했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니 먹고 싶은 만큼 먹기로 했다. 이런 비주얼의 스테이크는 난생처음이었다. 스테이크에 소스를 묻히고 샐러드와 같이 한 입에 쏙 먹으니 역시 돈이 최고다-하며 열심히 먹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감바스를 먹고 파스타를 볶아 달라했다. 파스타는 욕심이었는데 그래도 먹길 잘한 거 같다. 정말 맛있었으니까. 후회는 없다.





구제주에 위치한 미래책방에 방문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길래 문을 안여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문을 열었다. 잠시 비도 피할 겸 책을 구경했는데, 이번엔 미래책방에서 사고 싶은 책이 없어 구경만 하다 나왔다.





앨리스의 그림호텔 사장님이 너무 좋아하시는 서점 바라나시 책 골목에 갔다. 인도풍의 인테리어의 서점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인도 노래와 인도풍 의자, 인도의 국민차 짜이의 냄새가 너무 좋았다. 2010년에 인도에 단기선교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나면서 절로 미소를 짓게 됐다.

비를 뚫고 찾아간 바라나시에서 짜이를 주문하고 책을 보고 있었는데, 두 손가락을 합한 크기의 바선생과 마주했다.


그 순간 내가 참 대단했던 게 서울에서는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벌레도 '으악'하며 질겁했는데 이번엔 크게 놀라지도 않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친구들을 보는 게 굉장히 익숙해졌나 보다.


익숙.. 해졌다 생각해도 가까이하고 싶진 않으니까 바로 자리를 옮겼다. 읽고 싶었던 <걷기의 인문학>을 집어 들고 앉았다. 지난번 플레이스 캠프에 갔을 때 가격을 보고 구입하지 않았던 책인데 계속 생각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구입해야겠다 싶었다. 책을 구입하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은 판매하는 책이 아니라 해서 바로 알라딘 인터넷서점을 통해 결제하고 그 자리에서 책만 더 읽다가 나왔다.






난 집중력이 짧고 쉽게 질려한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한 권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여러 책을 번갈아 읽으며 완독 한다. 바라나시에서 <걷기의 인문학>을 겨우 두장 읽었다. 책이 너무 어려워서 읽히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인 거 같아 그만 읽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인스타에서 제주시내 카페를 검색해봤다. 망고빙수 사진을 보고 무작정 달려왔는데,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우유빙수에 냉동 망고가 쏙쏙 박혀있고 생망고가 위에 겹겹이 쌓여 있다. 착륙하는 비행기를 보며 망고빙수를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진다.





슬슬 짐 옮김이를 만날 시간이 가까워져 공항으로 가기 위해 움직였다. 가기 전 친구와 방문했었던 기념품숍이 들르기로 했다. 생활비가 조금 남아서 사고 싶었던 에코백과 귤피차를 구매했다. 예쁜 조개 액세서리는 사진으로만 담아왔다.





퇴사를 생각하는 직장인들에게 왜 퇴사를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인간관계가 힘들어서라고 답한다. 일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지만 동료와의 관계, 직장상사와의 관계가 힘들면 이직을 결심하곤 한다.


퇴사를 결심하고 휴직을 결정했을 때, 내가 너무 바보 같아 울기만 했다. 모든 이들이 겪고 잘 이겨내는 일을 너무 큰 일인 양 받아들이고 이겨낼 생각보다는 도망칠 생각만 해왔기 때문이다. 아빠는 택시기사이다. 제대하면서부터 운전을 하셨다. 엄마는 결혼을 하며 일을 그만뒀고, 언니는 대학생 때부터 사회로 뛰어들었고 현재는 프리랜서이며 댄서의 삶을 걸어가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잘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뭐가 부족해서 이런 일하나 견디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도망친 제주에서 나는 다시 서울살이를 하러 돌아가고 있다. 퇴사를 했다면 제주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했을 것이지만 휴직을 했기에 나는 떠나오면서 가족들에게 환경을 바꾸고 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이제 서울살이를 어떻게 꾸려갈지는 잘 모르겠다. 내년 휴직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무언갈'해야겠다는 목표만 갖고 나는 서울로 돌아간다.


안녕, 나의 제주야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다음엔 면접보러 올게.
그때까지 늘 상냥했던 그 모습 그대로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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