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온 번아웃이 더 무섭다는 것을.
임시 처방인걸 알지만
그렇게 몸과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면서도
나는 그저 생각했다.
"요즘같이 바쁘고 정신없는 세상을 살면서 번아웃 한번 안 겪어 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 다들 지치고 힘들지만 그냥 버티며 살아가는 걸 거야. 이 정도 힘든 걸로 유난 떨지 말자."
그리고 번아웃으로 몸과 마음이 기권할 때쯤, 나는 달콤한 휴가로, 디저트로, 친한 친구들과의 신나는 수다로 살살 달래 가며 그 수명을 연장시켜 왔다. 참 이 아이도 알고 보면 인내심이 많고 착하다. 맨날 혹사시키다 가끔 이렇게 숨통을 쉬게 해 주면 또 바보처럼 잊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걸 보면.
나 자신과도 잘 지내야 하는지 몰랐어
이렇게 순하고 착한 번아웃이라는 아이를 정말 나가떨어지게 만든 건 바로 인간관계에서 였다. 나는 나의 꿈만큼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왔다. 내 인생을 대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의 뜨거운 온도로 내가 맺은 인연들을 대하고, 나의 레이더는 항상 타인을 향해 있었다.
나에게 관계는 언제나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잘 지내야 할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어떨 때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한 것인지, 사회에서 만난 인연들에는 어느 정도 적당한 진심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돌아보면 이 모든 것들에 서툴렀다. 그로 인해 어쩌면 나 자신에게 써야 할 에너지까지 모두 소진해 버린 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를 아는 지인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겠지만 20살 이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나는 의존적이었으며 참으로 예민하고 세심하며 눈물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었다. 이제는 그 성격도 장점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적당히 무심할 줄 몰라 한껏 상처받고 온 날, 나는 기도했다.
"마음이 단단해지게 해 주세요. 작은 바람에도 이토록 심하게 흔들리지 않는 강한 마음을 갖게 해 주세요."
마음의 단단한 장벽을 쌓을 때까지
연약한 순두부 같은 마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곳이 뉴욕이었다. 언제나 흥미롭고 생동감 넘치는 도시지만 그 안에는 그만큼 다양한 인간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세상 어디나 그렇듯, 이곳에도 좋은 사람, 거리를 두어야 하는 사람,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 등등 여러 유형의 인간들이 있다. 보통의 마음으로는 살아내기 힘든 이곳에서 오랜 시간 버티며 살다 보니, 나의 마음도 어느샌가 꽤나 단단해졌다. 툭 치면 부서질 것 같던 순두부가 단단한 찌개용 두부정도는 되었다고나 할까.
그 과정에는 많은 실망과 좌절, 그리고 외로움의 시간이 있었지만, 내가 소원하던 바람은 이루어졌다. 중학교 때 화장실도 혼자 가기 싫어하던 그 아이는 이제 혼자 씩씩하게 세상 어디라도 누빌 수 있는 정도의 내공이 쌓였다. 이제 사회에서 만나는 타인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나를 지키며 관계를 맺어가는 법도 어느 정도 안다.
나를 감싸던 우주가 사라졌다
이런 단단한 마음의 장벽을 쌓으면서도 그 알맹이는 변하지 않았다보다. 남들 앞에서 강한척했지만 수없이 다가오고 떠나는 인연들 사이에 나는 분명 지쳐있었다. 그래도 가장 가까운 진짜 인연들은 내 주변을 지켜주었기에 몸과 마음의 번아웃을 오래 겪으면서도 나는 나름 잘 견뎌냈다.
하지만 나의 우주였던 사람, 그 사람과의 이별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9년 이상을 만났고, 그 헤어짐은 쉽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나의 약하고도 약한 그 모습까지 다 기댈 수 있었던 그 사람이 떠나자 번아웃도 함께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냈다.
진짜 무서운 놈은 따로 있었다.
때마침 이별을 겪을 때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로 세상이 멈추던 그때가 스스로 멈추지 못하던 나에게는 축복 같은 시간이었다. 멈추지 못했다면 아주 심하게 부서진 뒤에나 정신을 차렸을지도 모른겠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기에 너무 끔찍한 시간이었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숨 쉴 틈을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며 이별을 극복해 가던 나를 정말 K.O. 시킨 건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나의 부모님이었다. 정확히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왜 내가 그토록 철이 빨리 든 '착한 딸'이 되었는지. 어릴 적 많이 아파서 부모님을 고생시킨 아이였기 때문일까. 남들보다 10살, 15살은 많은 부모님의 나이 때문일까. 아니면 이타적인 나의 성향 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딸이었다.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나는 부모님을 끔찍하게 생각했다. 그만큼 한없는 사랑을 받아서 나는 행복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처럼 관계에도 균형이 중요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분들이 나를 지나치게 믿게 만들었고, 의지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삶에 대한 지침서가 있다면, 그 안에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책이 있었다면, 나는 더 현명하게 우리의 관계를 만들어 갔을까?
여러 질문을 해보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