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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Mar 26. 2024

20_번아웃에는 완치가 없다

삶의 적정한 온도를 찾아서

마음이 나에게 등을 돌리면


 열심히 살던 어느 날,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지고 의욕이 없어진다면 그건 몸과 마음이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때 힘든 마음을 알아주기보단 더 강해지라고, 그리고 더 버티라고 스스로를 압박한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민하고 복잡한 녀석이어서 계속 강해지라고만 밀어붙이면 결국 문을 잠그고 돌아서버린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면 인생의 그 어떤 불행과 시련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나를 몰아붙이며 혹사시킨 덕분에 더 많은 성공을 이루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빛나고 행복해야 할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 당연히 행복에 겨워야 할 이 상황에도 본인의 마음이 지옥에 있으니 당사자는 더욱 어찌할 바를 몰라 길을 잃고 헤맨다. 올라간 위치가 높을수록, 나를 더 강하게 혹사시켰을수록, 방황의 시간은 길고 그 안에서 스스로 느끼는 고통은 깊어진다.


번아웃과 이별하는 법


이번 휴식은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주어졌지만 어쩌면 운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이 완전히 나에게서 돌아서 버리기 전에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타고난 성향은 잘 바뀌는 게 아니라서 번아웃과 완전히 이별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아주 처음으로 돌아가 ‘나는 왜 꿈이라는 것에 집착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했던 노력이 지나쳐서 번아웃이 온 것이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번아웃 완치'의 첫걸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길고 긴 대답 끝에 내가 내놓은 대답은 '행복하고 싶어서'였다.


그때의 나는 아마 가슴이 뛰는 '꿈'을 찾고 그것을 이루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나의 꿈은 내가 열정을 느끼는 일을 찾는 것이었고 그것이 나에게는 디자인이었다. 그다음 나의 꿈은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이 이었다.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던 날, 그 회사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이 순간이 내가 꿈꾸던 그 장면이구나! 하며 감격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행복함이 끝난 뒤 나에게 꿈처럼 느껴졌던 순간들은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일상에 치여 꿈이라는 단어가 흐릿해질수록 나는 또다시 방향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는 행복을 찾는 방법은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설정해 둔 꿈을 이뤘는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고 에너지를 소진해 가던 나는 다음 꿈을 찾을 여유나 의욕이 사라졌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어느 방송에서 우연히 봤던 내용이 생각난다. 어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지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봤다고 한다. 연구 결과는 그 사람들이 이룬 성과나 재산 같은 것들이 행복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고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중학생 시절 행복했던 사람들이었다. 나에겐 이 말이 참 강렬하게 남아있다. 내 주변을 봐도 무엇을 이룬 뒤 갑자기 행복해진 사람은 없다. 그냥 원래 행복할 줄 알고 자신의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현재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에 어떤 조건을 달지 않는다. 지금 목표하는 걸 이루면 행복해질 거야. 돈을 더 벌면 행복해질 거야. 지금 아픈 몸이 다 나으면 행복해질 거야.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이 상태의 나로서 순간의 행복에 집중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세상엔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너무도 제각 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기에 스스로가 정의하는 '행복'도 모두 다를 수 있다. 세상에는 원래 타고나기를 쉽게 행복할 수 있는 성향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그 방법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이들의 행복을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부러워만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청춘의 내가 이걸 알았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았을까?


 아마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고 똑같은 인생을 살았을 것 같다. 그게 나에게는 최선이었고 그때의 경험들로 많은 것을 깨닫고 성장했으니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꿈을 찾아서 긴 여정을 떠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나는 그저 나를 알아가는 긴 여정 위에 서있는 것이었다. 어떤 길을 가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더 알게 될 테니 그 여정 자체를 즐기려 노력할 것이다.


번아웃에는 완치가 없다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며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책을 연재하면 끝까지 마무리는 할 수 있을까, 이런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했다. 막상 시작해 보니 한동안 글을 안 쓰던 갈증 같은 것이 해소되는지 멈출 수가 없이 몰입되었다.


 하지만 번아웃에 관한 글을 쓰면서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고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은 모두 지워버리고 글 쓰는 그 자체에 빠져 정말로 행복감을 느꼈다.


나는 여전히 삶의 적정한 온도를 지키는 것이 어렵다.


 언제나 적당히 따듯하게만 유지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또다시 균형을 잃고 지나치게 뜨거워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또한 때로는 삶에 지쳐서 조금 차갑게 식은 그런 온도를 지니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더 많은 날들이 따듯한 온기 정도로 채워지는 그런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동안 부족한 글 꾸준히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자신만의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든 분들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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