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열어준 화상 수업의 시작
아, 코로나 이놈
이젠 벌써 코로나가 터진 지 4년 차가 되니, 처음 전 세계가 얼마나 패닉에 빠졌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워낙 강력했던 기억이기에 잊어지진 않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 또한 우리는 적응하며 코로나라는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놈과 함께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코로나에게 고마운 건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근무 형태가 자리 잡게 만들어 준 것이다. 이로 인해 나 같은 내향형 인간은 삶의 평화와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나는 외향형의 나의 또 다른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사회생활은 나름 잘한 편이지만, 뼛속까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직장에서 쓰는 에너지는 상당히 컸다.
그렇게 직장도 재택으로 바뀌고, 스튜디오 형식으로 캠퍼스에서 진행하던 나의 수업도 모두 화상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진 시스템이지만, 처음 학교에서 모든 캠퍼스 수업을 화상으로 바꿔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는 소위말해 멘붕이 왔다. 직접 옆에 앉아서 마우스를 잡고 움직이는 것부터 보여줘도 느린 학생들이 있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화상으로 가르 친단말인가? 앞이 깜깜했지만 이미 학생들의 등록은 마감이 되었고, 내 이름도 떡하니 웹사이트에 등록이 되어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학기라서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바뀐 화상수업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나름대로 학교에서 온라인 강의 트레이닝도 받고,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수업이 다가올수록 다시 긴장 속에 살고 있었다. 게다가 수업이 최대인원으로 찼다는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다른 취미생활이나 밖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이 기회에 새로운 공부를 해보겠다고 등록한 것이었다.
어색한 첫 만남
나의 첫 번째 학생들은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양했다. 이번에도 비슷하겠지, 예상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첫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 시작 5분 전 초록색 "Start"를 누르자 격자로 깔끔하게 나눠진 네모칸 안 속에서 몇 명의 낯선 얼굴들이 보인다.
"아, 어색하다."
나의 온 신경이 나에게 소리쳤지만, 나는 화상수업을 백번은 해본 베테랑처럼 "만나서 반가워요!" 하며 한껏 업된 톤으로 인사를 건네며 활짝 웃었다. 내가 말을 안 하는 짧은 순간마다 고요가 흘렀다. 예의를 지킨다고 다들 묵음버튼을 눌러준 것이지만, 나는 각종 잡음이 존재하던 강의실처럼 누가 부스럭이라도 거려줬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게 모든 학생들이 각자의 네모칸 속 화면에 등장하고, 나는 나의 소개와 수업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문을 열었다. 다들 듣고는 있는 건지, 말이 없으니 알 수가 없지만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혼자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의 몇 시간같이 느껴진 독백의 시간이 지나고,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과 직업, 그리고 왜 이 수업을 듣는지를 돌아가면서 얘기했다. 나는 바쁘게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고, 직업과 이유도 간단하게 노트에 받아 적었다.
첫 번째 학생은 무려 내가 수업하는 학교인 New York School of Interior Design의 정교수로 학생을 가르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분이었다. '음, 지금 내가 이 베테랑 디자인학교 교수를 가르쳐야 하는 건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은 아주 옛날에 학교를 다녀서 컴퓨터 모델링 같은 건 배워본 적이 없다고, 새로운 걸 배우게 돼서 너무 신난다며 사람 좋아 보이는 그의 웃음에 나의 경계심도 함께 누그러들었다.
더 다양해진 학생들
그렇게 포스만으로 나를 제압시키던 교수님의 소개가 끝나고, 그다음 학생은 패션 마케팅 쪽 일을 하는 꽤 나이가 젊어 보이는 여자 학생이었다. 화상수업임에도 완벽한 머리의 세팅과 원색의 정장을 입은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다. 그녀는 현재 하는 일에 만족하지만 어릴 적부터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고, 바쁘던 일상이 멈춘 지금이 한번 시도해 볼 기회일 거 같아서 수업을 등록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몇 명의 학생이 소개를 이어갔다. 그다음은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회색빛이 살짝 도는 웨이브 진 짧은 흰색머리를 가진 여자분이었다. 나이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60대 후반? 70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를 지닌 그녀는 뉴욕에서 변호사로 평생 일하다 이제 은퇴하고 자신의 집을 디자인하고 싶어서 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위험해진 맨해튼을 벗어나 자신이 주말에 가던 집에서 수업을 듣던 그녀는 평생 자신의 집을 짓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이미 구입해 둔 집이 있기에 집을 새로 짓지는 못하지만, 이 기회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해서 집의 실내를 새로 싹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자신이 꿈꾸는 주방이 있는데, 그걸 직접 디자인하고 모델링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드디어 마지막 학생. 내 나이또래쯤 되어 보이는 동양 남자였다. 월스트리트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고, 앞서 소개한 변호사 할머니 학생과 같은 이유로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은 금융권에서 일하지만 자신의 원래 꿈은 건축가였다고 했다. 이 수업으로 뭘 할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최소한 자신의 집을 고칠 때 건축가나 공사를 하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은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냐며 수줍게 웃었다.
"아, 너무 재밌다!"
처음에 긴장되었던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나는 제각기 다른 이유로 이 자리에 모인 이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렇다. 나는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걸 극도로 좋아하는 '인생이야기 덕후'였다. 내가 쉽게 만나보지 못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내가 가르치는 수업이라는 공통분모로 한자리에서 만나다니. 이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쌓아갈 시간이 기대되고 설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