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일을 통해 만난 특별한 인연들
따듯한 눈빛을 지닌 사람들
워낙 내성적이었던 초등학교 시절, 발표가 있을 때면 나는 극도로 긴장했다. 거기에 이름으로도, 키로도 언제나 제일 앞쪽 순서로 발표해야 했기에 가끔은 이러다 내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워낙 숫기가 없는 성격에 반친구들이 모두 나만 바라보는 압박감 넘치는 상황은 나에게 곤욕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럴 때면 난 나에게 친절한 미소를 띠어주는 친구들만 바라보고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친한 친구를 쳐다보면 더 어색해지는 것 같아서, 그냥 적당히 친하지만 그냥 뭔가 눈에서 "괜찮아! 떨지 말고 천천히 해도 돼!"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어릴 적 습관은 나이가 들어서도 비슷했다. 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눈빛에서 왠지 온도가 느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뭔가 낯선 장소에 가거나 불안한 마음이 들면 그런 눈빛을 지닌 사람들에게 시선이 자꾸 간다. 그냥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눈으로 암묵의 응원 같은 걸 해준다는 나만의 착각과 함께 용기를 얻곤 한다.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군분투하던 첫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력은 없지만 학생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뭔가 자신감 있어 보이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때 맨 앞에 앉아 있던 차분해 보이는 인상의 한 학생과 눈을 마주쳤다. "아, 그 눈빛이다!" 나는 혼자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정도의 나이로 보였는데, 피부는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였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머리는 긴 머리를 대충 헐렁하게 묶었는데 멋스럽게 검은 머리와 흰머리가 잘 섞여있었다. 이 친구의 따듯한 눈빛에서 나는 "잘하고 있어요!"라는 용기의 말을 읽었고, 그것은 나에게 큰 마음의 안정감을 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수업할 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눈 덕분인지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학생들과 꽤나 편한 사이가 되었다. 그중 특별히 뭔가 잘 통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일부는 정해진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따로 연락을 해왔다. Patra는 그중 한 명이었고, 지금까지 배운 기본적인 모델링이 아닌 정식적인 공간 디자인을 따로 수업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일단 대답을 하기 전 Patra와 줌으로 미팅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업하면서 잠깐씩 이야기를 나눠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따로 한 시간 정도 얘기해 보니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현재는 개인 프리랜서로 그래픽 디자인과 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고, 또한 무대 안무가로도 일하고 있다고 했다. 공간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공공 전시 디자인에 관심이 생겨서 대학원에 지원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학원이 우연히도 내가 공부했던 대학원이었다.
나도 공간 디자인으로 개인 교습을 한 적은 없었기에 고민을 많이 했지만 내가 나온 대학원이기도 하고, 공간디자인 위주의 포트폴리오 작업에는 자신이 있어서 함께 수업하기도 결정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 화상으로 만나 우리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처음엔 역시 건축이나 인테리어 디자인 출신이 아니라 공간 배치를 하는 것이나 전체적인 공간의 흐름을 이해하는 게 많이 부족했다. 기본적으로 배웠던 모델링에서 벗어나서 공간 디자이너로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과정을 한 단계씩 익혀나갔다.
이 모든 과정이 흥미로웠던 건 나도 이런 걸 어디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전시 공간 디자인은 또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원에서는 추상적이거나 창의적인 사고능력을 키워주는 작업을 주로 했고, 그걸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건 사실 각자의 몫이었다. "가르치는 중간중간,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은 학생의 관심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개별적인 상황에 대한 컨설팅으로 채워 넣으며 노력했다.
돈을 받고 배우고 있구나!
그렇게 함께 개인 수업한 지 7,8개월쯤 되었을까. 그동안 실력이 많이 늘은 것 같아 두 배 이상 큰 공간을 주고 콘셉트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이끌어가게 해 보았다.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여서 인지 감각 자체가 좋았고, 평소 글도 자주 써서 생각의 깊이도 굉장히 깊었다. 이제 수업시간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보다 전반적인 콘셉트이나 디자인 리서치 해온 것을 상의하는데 많이 소비되었다.
평소 대학원 다닐 때 최종 프로젝트 발표를 할 때면 각 업계에서 베테랑 디자이너들이나 전문가들이 와서 크리틱을 해주곤 했다. 가끔 그 짧은 발표를 듣고도 아주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걸 이 짧은 시간에 다 이해하고 정리해서 저렇게 조리 있게 말하는 게 가능한가?" 생각했다. 어떤 아이디어나 생각을 듣고 순간적인 사고력이 뛰어나서 그 자리에서 툭툭 내뱉는 말들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개인 수업을 하다 보니,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었지만 빠른 시간에 이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나의 전문적 지식까지 더해서 피드백을 주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됐다. Patra 말고도 몇 명의 학생들과 개인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들의 배경과 원하는 목적이 모두 달랐기에 수업방식도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누군가의 깊은 생각과 비전이 담긴 '유'를 창조한다는 건 모두 같았다. 다양한 학생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그들이 더 좋은 작품을 완성하도록 돕는 과정에서 나는 큰 만족감을 느끼고, 기존 회사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소명감 같은 걸 느꼈다.
이걸 내가 했다니,
믿을 수가 없어!
그렇게 나는 돈을 받고 수업을 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내가 얼마나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지는 학교 수업에서 느꼈지만, 정확히 '왜' 좋아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수업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기술적인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것보다 한 개인의 생각과 비전이 담긴 프로젝트를 이끌어주는 그 자체를 즐긴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 주제를 가지고도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그들의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서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좋았다.
또 하나는, 학생 본인들도 모르는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주고 그걸로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나에겐 더없이 큰 기쁨이었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너무 대단한 일이지만, 그걸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 창작의 영역에서 목격하는 건 더욱 특별한 일이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수록 점점 자신의 작품에 애정을 느끼며 하나씩 쌓아가는 학생들을 지켜보고 이끌어 주는 과정이 나의 개인 작품을 하는 것만큼이나 좋았다.
그렇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모두들 스스로에게 놀란다.
"I can't believe I made this!"
때론 자신이 만든 프로젝트가 영 마음에 안 든다고 걱정하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Remember where we started? You've come a long way." 정말 많이 늘었다는 영어 표현으로 그들의 가장 처음 시작을 상기시켜 주었다. 나와 처음 만나 선 하나 긋기, 상자 하나 만들기도 서툴러서 버벅거렸던 게 불과 1년 남짓하다는 사실을.
그렇게 나름 만족하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해서 나의 학생들은 또다시 그들의 꿈을 향한 다음 여정을 떠났다. 불안한 마음, 확신이 없는 마음, 설레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을 모두 안고 말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나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났지만, 우리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분야에서 시작을 알리는 경우도 있고, 여전히 꿈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헤매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모두 조금은 자신의 꿈에 가까워져 있기를, 그리고 가는 길목마다 그들을 이끌어줄 좋은 귀인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