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가명)이야기를 조금 써보려고 한다.
피피가 사는 마을은 흙색으로, 스쿠터를 타고 달리면 비포장도로의 흙먼지가 마을을 더욱 흙 빛깔로 물들이는 곳이었다. 스쿠터를 대여할 때 ‘몇 시까지 반납하면 되나요?’ 라는 나의 도시적인 물음을 외려 미개하게 만들어 버리는 곳으로, 스쿠터 사장님의 꾸밈 없는 대답은 마을의 흙색만큼 순박하고 낭만적이었다.
“Sunrise to sunset." (해 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피피와 나는 길에서 만난 사이였다. 내가 피피를 만난 건 해 뜨기 전의 어느 겨울 아침 동남아의 시골길에서였다. 피피는 좋은 일출 장소를 안내하는 대가로 수고비를 챙기는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피피의 호객 상대였다. 삐끼와 호구 사이. 해 뜨기 전 비즈니스로 만난 우리는 해질 무렵엔 선물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고 피피가 살아온 이야기를 피피와 피피의 친구를 통해 조금씩 듣게 되었다.
피피는 나에게 어린 딸의 사진을 보이며 딸 자랑을 했다. 나보다 대여섯 살이나 어린 피피가 예닐곱 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딸을 가졌다니 나보다 10년은 더 앞선 셈인가. 피피가 대단하고 기특했다. 가족사진에 남편은 없었다. 남편은 죽었다고 말하는 피피의 표정은 피피의 검은 얼굴을 더 검게 물들였다.
피피 남편 죽은 것 같지 않은데, 옆에 있던 내 친구가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그래 보여.
친구의 추측이 맞았다는 걸 잠시 후 피피의 친구 주주를 통해 듣게 되었다.
피피가 없는 사이 주주는 피피가 참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했다. 저리도 좋은 사람이 나쁜 남자를 만나서 참 안 됐다며. 둘은 동네를 들썩일 만큼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끝내 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남자는 지금 어디에 있어?”
“이웃집에 살아”
“뭐?”
피피의 헤어진 남편은 피피의 이웃집에서 다른 여자와 새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피피는 왜 다른 마을로 이사하지 않는 걸까. 대화 중에 피피가 ‘나는 내 나라를 모른다. 이 도시도 모른다. 내 마을만 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피피를 한국에 초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피피, 혹시 넌 여권이 있어?’라는 나의 질문에 꼬리의 꼬리를 물게된 대답이었다.
환경을 바꿀 만한 능력 따위를 운운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피피는 스스로 환경을 바꿀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바꿀 수 없다고 굳게 믿는 듯했다. 여기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여기서 죽어야만 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 어떤 불쾌 자극도 그녀를 그 마을에서 밀어내지 못했다. 둘 사이에 낳은 아이까지 있는 전남편과 이웃하며 살아가더라도 그냥 여기에 머물러야만 했다. 원래 그런 인생이었기 때문일까. 그때 쯤 ‘그냥 원래 그런 것’은 참 위험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변화는 고통을 수반하지만 꼭 그만큼의 발전 또한 가져다준 적이 많았다. 변화해야할 시점에 고통을 외면하면 고통은 사라지기보단 배가 되었다. 나 자신을 현실에 박제시킨 채 옴짝달싹 못하게 내버려 둔다면 궁극적으로 더 오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가끔 예전에 다리 수술을 했을 때를 떠올린다. 잘 걷기 위해 수술을 한 것임에도 걸을 날이 다가오니 두려웠다. 수술한 다리로 한 발 내딛는 것이 살얼음판 딛는 양 겁이 났지만 그것은 내가 반드시 감내해야할 몫의 고통이었다. 그냥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나는 타고난 절름발이가 아니었고, 내 다리도 원래 아픈 것이 기본 값은 아니었으므로 변화 가능한 지점에서 성장과 발전이 있었다. 내버려 두었다면 나는 여태 다리를 절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원래 그런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 뿐이었다.
그러나 피피에게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더 해줄 수 있었을까. 내 안에도 이미 여러 명의 피피가 살고 있는데 말이다. 피피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 수준의 삶을 사는 법이므로 피피 또한 피피 수준의 삶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나는 피피에게 변화에 대해 일갈할 자격이 없다. 다만 나의 이 작은 삶의 테두리에서, 사소한 일상에서 안주하고자 하는 ‘내 안의 피피’를 불러 세워 다시 걸어 나가도록 독려해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