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아들에게 보내는 문학 편지 #16
지난 주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두 소설을 바탕으로 그 나라 사람들의 고독을 조금 느껴봤는데 오늘은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혁명적 민중’이라는 열쇳말로 알아보자. 그는 다작을 했고 중요한 작품도 많지만 오늘은 “장길산”, “철도원 삼대”, “오래된 정원”이라는 세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할게.
먼저 “장길산”은 1974년부터 84년까지 10년간 한국일보에 게재되고 84년에 10권의 소설로 나왔어. 조선 숙종 때 실재한 장길산이란 인물의 삶에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해서 만든 소설이지. 시대상 조선 후기의 이야기야. 그리고 “철도원 삼대”는 일제 강점기(이백만의 삶)와 한국전쟁기(이일철의 삶), 그리고 산업혁명기(이지산의 삶)와 현대에 이르는 약 백 년의 역사를 철도 노동자 가족의 연대기로 묘사하고 있어. 2020년에 출판된 비교적 신작이구나. 세 번째, “오래된 정원”은 2000년에 창작과 비평에서 나온 소설인데 주된 배경은 1980년대로 주인공 오현우의 수배 생활 중에 연인 한윤희와 나눈 사랑, 이후 긴 수감 생활과 윤희의 기다림, 그리고 둘의 만남과 삶에 대한 회고로 이어지는 소설이야.
지난 편지에서 콜럼비아의 부엔디아 가문과 브라질의 그 강으로 간 아버지는 자신을 고독의 늪에 빠뜨리는 선택을 했는데 그 이유를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사회의 부조리, 국가의 폭력, 국제적인 착취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도저히 이겨낼 힘이 없어서 고독의 길을 선택했다고 했어. 그런데 황석영은 싸울만하다고 생각했나 봐. 특히 민중에게 희망을 두고 그중에서도 혁명적 민중의 힘으로 구태의연한 체제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아.
조정래의 “한강”에서 잊히지 않는 인물이 있어. 가난한 집안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허드렛일을 하다가 다행히 양곡 판매점 주인에게 신용을 얻게 되어 판매원으로 승진하게 되었거든. 그랬더니 글쎄 이놈이 쌀을 팔면서 슬쩍슬쩍 곡식을 빼돌리는 거야. 주변에서 눈치채고 한 소리 하자, ‘나도 드디어 빼먹는 위치에 올랐다’며 오히려 부패를 권리로 당당하게 주장하지. 결국 주인에게 발각되어 해고당하게 돼.
언젠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를 비난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이 인색하고 철면피에다 오만하다고 비난하잖아. 그런데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논리도 있어. 바로 부도덕이지. 걸핏하면 거짓말하고 가정 폭력을 하기도 하며 자기보다 조금만 못나면 짓누르려 한다고. 또 부자들이 저지르는 큰 비리에 비하면 새발에 피라며 자신들의 부정을 합리화한다고 말이야. 두 편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지 않니?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 보통 사람으로 이뤄진 민중은 작가의 바람대로 역사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진보는 민중의 힘에서 나온다고 믿었던 듯해.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혁명적 민중의 힘으로. 물론 혁명적 민중이 늘 투사인 건 아니야. “장길산”의 주인공들과 “오래된 정원”의 오현우는 불합리한 체제에 직접 맞서 싸웠지만 “철도원 삼대”에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가족이 나오거든. 그들은 일상에서 꾸준히 경험하는 차별과 불합리에 맞서서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는 노력을 하는데 이것도 저항의 형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 민중은 꼭 도드라지는 영웅을 뜻하지는 않아.
더 나은 세상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답변할지 궁금하구나. 개인화된 시대에는 그런 질문보다는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하고 내가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한지가 중요하겠지. 하지만 이전 편지들에서 종종 말했듯 우리나라는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해왔고 그 안에서 개인의 삶이란 갈대처럼 흔들렸기 때문에 나라가 안정되고 발전하지 않으면 나와 가족의 삶도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윗세대 어른들은 뼈저리게 느꼈어. 다시 한번 묻자. 우리나라가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황석영 선생은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 민중이 각성해야 한다고 믿었고 비판적 사회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권력자의 비리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믿었던 듯해. 그밖에 어디에 희망이 있냐는 거지.
엘리트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믿는 사람이 있어. 하지만 그 믿음은 그리 신통치 않아. 그들은 인재 양성에 힘쓰겠지만 그런 인재들이 모두를 위해, 공익을 위해 애쓰기보다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노력하고 나만의 왕국을 세우려고 온갖 꾀와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또한 제도주의자들도 있어. 그들은 부정과 비리의 원천을 봉쇄하기 위해서 현명하게 고안된 제도를 마련하여 애초에 부조리가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자고 주장하는데 그 말이 일리가 있고 나도 오랜동안 그런 믿음을 지녀왔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도 그리 신통한 해법은 못 돼. 왜냐면 애초에 완벽한 제도를 만들 수도 없거니와 그나마 괜찮은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고통스런 긴 싸움이 필요하거든. 어떤 제도를 현실에 뿌리내리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암묵적 지지가 필요하고 그런 동조자들을 얻기 위해서 개혁적 성향의 시민/민중 집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빼놓고 ‘이 제도는 다른 나라에서 신통하게 작동하는 제도인데 우리도 도입합시다!’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망한지... 예컨대 청소년들이 진로를 고민할 겨를도 없이 12년 동안 입시에 매달리는 게 안쓰러워서 북유럽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 일정 기간 학업을 멈추고 진지하게 진로를 모색할 시간을 주는 제도를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했어. 그런데 지금 어떠니? 이 제도가 취지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저 중1 내신시험이 사라진 것말고는 큰 변화가 없거든. 고3 정도의 나이에 대학과 전공을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1년쯤 여행도 하고 경험도 쌓는다는 건 얼마나 꿈같은 일이니. 아직 우리는 그런 제도를 도입할 준비가 안되어 있던 거야.
다시 혁명적 민중으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엘리트 교육도 제도 개혁도 그리 신통하지 않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해도 그게 곧 혁명적 민중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 더 근본적인 비판으로 ‘민중’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라는 주장도 있어.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허상이자 환상이라는 거야. 긴 역사 속에서 가끔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저항적인 인물이 마치 그 시대 정신을 구현하는 인물인 듯 과도하게 치장하고 그런 인물들 몇몇을 이어서 혁명의 역사가 유지되고 있다는 식의 해석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거야.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대로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면 ‘민중’도 상상의 공동체라는 주장이 충분히 성립하지.
이런 저런 주장들을 소개하느라 이야기가 길어졌구나. 읽느라 피곤하겠다. 이야기를 줄이고자 내 생각을 이야기해도 될까. 우리나라는 4.19 혁명-지배계급이 바뀌어야 혁명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4.19는 역사학에서 말하는 혁명은 아니지만-과 87년 6월 항쟁에 성공하면서 드물게 정치적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어. 세상에는 시민의 의식 수준이 높은 나라가 있고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도가 높은 나라도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상화된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은 결코 누리지 못하는 평화와 안정을 누리는 사회, 그리고 나쁜 놈은 처벌된다는 소박한 믿음이 지켜지는 사회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회도 있지. 우리는 어느 정도일까.
혁명적까지는 아니어도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의 자정작용이 가능했다고 나는 생각해. 함석헌 선생이 말하는 ‘씨알’의 소리, 곧 깨어 있는 백성의 외침이 우리 역사를 그나마 구덩이에서 구해냈다고 믿고 있어. 하지만 그것이 집합적으로 구현되어 ‘민중’이라는 실체가 존재하는지 묻는다면 그건 애매해. 가끔 구름처럼 뭉게뭉게 생겨났다가 바람에 쓸려가는 존재인 듯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에 구름처럼 시민들이 모여들었다가 탄핵이 되고 나서는 바람처럼 흩어져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내잖아. ‘이건 아니다’는 공분에 일어났고 ‘이제 되었다’고 흩어지는 시민들. 그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민중’을 느끼다가 집으로 돌아가 평범한 ‘개인’이 되었겠지. 중요한 건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이 일어나는 힘이 어디서 생기냐는 건데... 콜럼비아 바나나 학살 사건처럼 정부가 총칼로 짓누리라는 위협이 있어도 맞서 싸웠던 80년 5.18 광주시민들의 용기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정말로 작가의 말대로 유구히 흐르는 혁명적 민중의 정신이 있는 것일까.
“오래된 정원”에서 주인공 오현우 말고 기억나는 인물이 있어. 그는 박정희 암살을 계획해. 사실 김재규의 암살이 없었다면 이후로도 수십 년간 박정희 통치가 이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니. 끝이 보이지 않는 독재체제를 끝내고자 당시 급진 과격파 운동권에서는 박정희 암살을 시도하는 그룹이 있었거든. 그런 시도가 너무 무모하다는 비판이 운동권 내부에서도 있었는데 그 사람 대답이 걸작이야. ‘먼저 뚜벅 걸어가는 사람도 있소.’
우리나라의 이런저런 부조리와 부패에 대해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최소한 안전이 보장되고 자기가 꿈꾸는 삶에 도전하는 기회가 열려 있어. 이 정도의 최소한을 위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이 필요했는지 몰라.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듯이 밤거리에 여성들이 편안하게 편의점에 다닐 수 있고 어린이들이 혼자서 등교할 수 있는 그런 최소한을 위해서. 광주 할아버지가 얘기하시는 배고픈 설움을 면하기 위해서.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이만큼 벗어나 있기 위해서... 이름 모를 그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야. 여섯 번째 편지에서 소개한 황석영의 “객지”에서 간척사업으로 바다를 메우는 그 위험한 공사에 동원되는 떠돌이 노동자들 기억나니? 그 모든 사람을 민중이라고 부르고 그중에서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입바른 소리를 해온 몇몇을 혁명적 민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역사가 혁명적 민중에 의해 조금씩 진보해왔다는 황석영 선생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겠어.
스무살 무렵 무더운 여름 서늘하고 한적한 대학 도서관에 앉아 “장길산”을 읽던 때가 생각나네. 당시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도 읽었는데 두 소설이 비슷한 구도라서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어. “오래된 정원”을 읽을 때는 운동권들의 비밀스런 연락법, 형사를 따돌리는 노하우, 그리고 18년이나 되는 그 쓸쓸한 기다림이 생각나. “철도원 삼대”에서는 만주로 가는 거대한 기차의 기관사, 조선인으로서 그의 조수가 되는 것이 큰 영광이었는데 아들이 조수가 되어 아버지가 크게 기뻐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소달구지가 더 흔하던 시대에 거대하고 기다란 쇳덩이가 굉음을 내뿜으며 만주벌판까지 달려가는 광경은 최첨단, 최신식의 문명을 상징했겠지.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이 될 때 누구의 이웃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도움이 되기도 해. 황 작가는 민중을 희망으로 여기고 그들의 이웃이 되려고 했었지. 우리는 누구의 이웃으로 살아갈까. 결국 관계 속에서 정체성이 확립된다는 점에서 인간은 마르틴 부버가 이야기하는 ‘사이 존재’야. 그는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철학을 펼쳤는데 생각해보면 나 자신에 너무 집중하느라 그 말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이 오래구나. 아들은 누가 되었든지 희망을 걸만한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과 의미 있는 만남을 이어가길 바란다.
오늘 편지는 이만 줄일게. 다음 주에는 삼국지와 수호지와 서유기의 세계로 가볼까? 안녕!
- 문학 편지의 마무리를 잘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