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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고래 Jul 28. 2024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열일곱 아들에게 보내는 문학 편지 #17

  

제목에서 재밌는 삼국지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미안한걸. 오늘 편지는 삼국지와 수호지로 대표되는 이야기와 서유기로 대별되는 이야기 사이의 차이에 대해 쓰려고 해. 그리고 이 편지의 주된 내용은 류짜이푸가 쓴 “쌍전”이라는 책(글항아리 출판, 2012)의 주장과 그에 대한 내 생각이야.  

    

삼국지 혹시 읽어본 적 있니? 어쩌면 침착맨이 들려주는 삼국지 이야기를 들어봤을지도 모르겠구나. 참! 열 권으로 된 만화 삼국지를 여러 번 읽었었지! 정말 재미있지 않니?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며, 제갈공명을 삼고초려로 모셔오는 이야기며, 적벽대전의 기막힌 전술이며 위촉오 세 나라 영웅들이 지략과 용맹을 뽐내는 전투들은 가슴을 뜨겁게 만들지.      


수호지는? 우리들에겐 삼국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중국에서는 수호지의 영향력이 삼국지 못지 않다고 해. 나도 십수 년 전에 한 번 읽어봤는데 또 다른 매력으로 흥미진진하더구나. 삼국지처럼 국가간 전쟁이 아니라 주인공 송강을 중심으로 108명의 무리가 양산박이라는 곳에 모여 세력을 이뤄 모험과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야. 의적의 무리 108명의 개성이 다 뚜렷해서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지지.      


서유기는 어떠니? 어릴 적 손오공이 나오는 만화를 많이 봐서 왠지 익숙하지만 열 권 정도 되는 서유기를 책으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나도 일부러 마음 먹고 30대 초반에 도서관에서 빌려다 열심히 읽었어. 대강의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 읽으니 새롭더라. 특히 수시로 나오는 긴 한시가 기억나. 예스러운 문체와 낭만으로 몇 장을 이어가는 긴 시를 자주 만나게 돼. 물론 시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신비로워서 그 재미로 읽었지.      


중국의 4대 기서라면 홍루몽까지 포함되는데 난 아직 이 책은 보지 못했구나. 참고로 삼국지와 서유기를 쌍전이라고 부르면서 호되게 비판한 류짜이푸는 홍루몽 전문가라고 해. 그러면서 서유기와 홍루몽은 여러 면에서 삼국지와 서유기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하네.      


이제 본격적으로 쌍전을 비판해보자. 이제는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권의 측면에서 비판할 점이 많아. 우선 삼국지와 수호지에는 살인이 난무해. 그것도 무고한 사람들, 특히 수호지에서는 여성과 어린이를 살인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들이 정당화되거나 어쩔 수 없다고 넘기거든. 삼국지에서도 수많은 전쟁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 대승을 이룬 경우에 자랑스러워하는데 대승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하지. 그리고 두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남성의 소유물이거나 성적인 매력을 이용해서 계략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점은 당시의 성차별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이야.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성 중에서 삼국지나 수호지를 좋아하거나 감명 받은 소설로 말하는 사람을 아직 나는 본 적이 없어.      


그렇다면 서유기는 다를까? 홍루몽을 읽었더라면 네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텐데 미안하네. 어쨌든 서유기라고 해서 성평등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건 아니야. 어쩔 수 없이 여성들은 마녀나 성녀, 혹은 모성을 대변하는 인물로 나오지. 이 세 가지는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오랫동안 여성을 대상화하는 세 가지 방향이었어. 이런 점에서는 서유기라고 더 낫지 않아. 하지만 서유기의 기본 구도는 ‘구도의 길’이라는 점에서 투쟁과 살육을 정당화하는, 혹은 힘의 논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적자생존의 가치관을 강화하는 쌍전과는 달라.    

  

당시 중국은 불교라는 새로운 진리 체계가 전파되고 있던 시절인데 실존 인물인 당나라 현장법사를 본떠서 스님이 629년부터 645년까지 16년간 서역(인도)로 불교 경전을 구하러 떠난 여행에 상상력을 더해 만든 소설이야. 이 소설에도 물론 비판할 점이 있지. 나는 여행길에 만난 수많은 요괴들이 바로 비판받아 마땅한 점이라고 생각해. 중국인이 인도까지 가는 길에서 얼마나 새로운 사람들과 자연을 만났겠니. 그런데 그런 존재가 낯설다 보니 말도 통하지 않고 먹을 것도 신통치 않아서 참 고달픈 여행이었을 거야. 그런데 그 여정에서 만난 기이한 사람들과 환경을 온통 요괴들이 사는 세상으로 묘사한다는 건 너무나 중국 중심적인 사고방식이지 않니? 하긴 그런 고충을 다 이겨내고 무사히 불경을 당나라로 가지고 온 현장법사의 업적을 칭송하자면 온갖 요괴를 다 이겨냈다는 식의 서사가 어울리긴 하겠지만.      


서유기에는 도교적인 세계관과 불교적인 세계관이 섞여 있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도 도가의 세계관에서나 통용될 법한 인물들이지. 그런데 이들이 힘을 합쳐서 부처님의 진리가 적힌 경전을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에는 더 높은 차원의 질서를 염원하는 중국인들의 집단적인 염원이 담겨있지 않나 싶구나.      


이십 대에 만난 스웨덴 출신의 가수가 있어. 우리나라 남자를 만나 한국에서 결혼까지 한 사람인데 나와도 인연이 있어 몇 번 대화할 기회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더라. 어렸을 때 우리로 말하면 뽀로로처럼 인기 있는 만화가 있었는데 거기에 거북이 캐릭터가 나온다는 거야. 그런데 그 거북이는 얼마나 느리고 평화로운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고 그 거북이는 느려도 늘 자기 행복을 추구하면서 평온하게 잘 살아서 좋아보였다는 거야. 그래서 그 거북을 보며 자란 자기 또래 어린이들은 ‘느려도 괜찮아, 행복하게 살 수 있어.’라는 희망을 품었다고 하더라.      


이야기는 많은 면에서 인성을 형성해. 무슨 이야기를 즐겨 읽는지, 무슨 영화를 즐겨보는지에 따라 살아가는 방향이 결정되기도 할 정도야. 그리고 그런 선호가 국가적으로, 지역적으로, 집단적으로 발현된다고 류짜이푸는 말하고 있어. 삼국지가 주는 짜릿함, 그 신통방통한 전략과 전술, 수호지가 주는 후련함, 시원하게 세상을 뒤엎는 의리남들의 이야기, 이런 것들이 아주 오랫동안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를 지배해왔어. 이를테면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이 수호지가 정당화하는 사회 전복의 논리와 맥이 닿아 있다는 거야. 천 년 이상 대다수의 중국인들의 심성을 장악하고 점령한 삼국지와 수호지의 논리에 중국 인민들이, 심지어 마오쩌둥까지도 반응한 거라고 류짜이푸는 설명하고 있구나. 우리도 마찬가지지. 더러운 세상 싹 갈아엎자는 식의 논리는 5.16 군사 쿠데타와 12.12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는 논리로 사용되지 않았니. 일본도 마찬가지야. 일본에 삼국지와 수호지가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도 결국 힘의 논리이고, 20세기 초반 일본이 ‘대동아공영권’ 운운하면서 자신들이 아시아를 제패하는 국가이고 서구와 대등하다는 논리를 폈던 점에서 일본 국민들이 일반 정서 중에 힘을 숭상하는 흐름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구나.      

우리가 이야기를 기억하거나 만들어 낼 때 언제나 밑바탕에 어떤 원형이 되는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야. 오랜 시간 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전승되어온 구전이 바탕이 되어 두고 여러 가지로 각색되거나 변주되기 마련이지. 그런 원형이 되는 이야기를 탐구하면 요즘에 유행하는 영화나 소설들이 거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도 알아차릴 수 있어. 가끔 새로운 세계관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무슨 이야기에 열광하고 환호하는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어떤 건지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구나. 그냥 하는 얘기지만 내 생각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뽀로로에 나오는 포비처럼 든든하고 평화로운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 선호하지는 않을 것 같아. 부지런하고 똑똑한, 손해 보고는 못사는 에디 편에 더 가깝지 않을까.     


삼국지와 서유기, 그저 재밌게 웃고 넘기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나도 순전히 재미를 위해서 읽었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는 물론 우리의 정서를 형성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가치관을 주입하는 방향으로... 글쎄, 이런 주장에 대해 너의 의견이 궁금하구나. 아직도 세계는 전쟁 중이고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하며 아직 평화로운 시대는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오늘은 이만 마칠까. 다음 주에는 일본 이야기를 해보자. 소설 “파친코”와 ‘초국가주의’라는 열쇳말로 일본인들의 심리를 살펴보려고 해. 다음 편지에서 만나자. 안녕!          


- 편지의 끝이 보이면서 한 편, 한 편이 소중해지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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